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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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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문상

입력
2006.09.2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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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 갈 일이 생기면 두 번째쯤 드는 생각이 '뭘 입고 가나?'다. 점잖은 옷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복장에 무신경했는데 이젠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차라리 안 가고 만다.

1989년, 겨울이 끝날 즈음이었다. 시인 이문재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대여섯 명이 광화문에서 만나 문상을 갔다. 빈소가 차려진 이문재 본가가 김포읍이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버스가 광화문에 있었다. 그때는 다들 부모님들이 구존해 계실 연배여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감상이 덜했던 것 같다.

우르르 버스를 타고 낯선 길을 가는 동안 꽤나 시시덕거렸다. 그 무렵 부시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신문에 재미난 기사가 났었다. 미국인 수행원들이 한식집에 갔다 나올 때, 수많은 구두 속에서 저마다 제 구두를 찾느라 얼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주고받으며 이문재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입을 틀어막고 정신없이 골목으로 뛰쳐나왔다. 현관에 가득 흐트러진 구두를 보자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치올랐던 것이다.

그 며칠 후 새벽, 시인 기형도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골목에서 몸을 뒤틀며 웃던 그가.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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