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사에 ‘기적’으로 기억되는 대표적인 사건들이 있다. 이른바 ‘사라예보의 기적’과 ‘도하의 기적’이 그것이다.
사라예보의 기적은 한국 탁구 대표팀이 1973년 옛 유고의 사라예보에서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을 일궜던 쾌거. 도하는 93년 10월 카타르에서 벌어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이 극적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던 ‘축구의 성지’이기도 하다.
기적이 기적으로 통할 수 있을까. ‘사라예보 기적’의 주인공이 ‘도하의 기적’을 위해 한국 선수단의 안 살림을 맡았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12월1~15일) 한국 선수단의 최고 사령탑을 맡은 ‘탁구 스타’ 정현숙(54) 단장.
역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통틀어 최초의 여성 단장 자리에 오른 정현숙 단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큰 짐’으로 표현했다. 정 단장은 “그 동안 규모가 작은 대회에선 두 세 번 여성 단장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큰 대회의 단장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여성 단장이 탄생한 것은 그 동안 꾸준하게 영역을 넓혀온 여성 체육인들의 활동 결과”라고 평가했다.
현역 선수 시절 수비형 셰이크핸드의 전형을 보여줬던 정 단장은 선수들과의 친밀감 형성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여성이기 이전에 경기인 출신으로서 메달에 대한 긴장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정 단장은 여성의 섬세함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좋은 예로 ‘사라예보 기적’때 동료로 뛰었던 후배 이에리사(52) 태릉선수촌 촌장을 꼽았다.
정 단장은 “그 동안 선수촌장을 비롯해 체육계의 많은 포스트가 남성 위주로 짜여졌다. 남자 협회장이나 단장님들은 워낙 사회적 활동이 많아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이에리사 촌장이 부임한 뒤 달라진 모습을 봤다. 운동 여건도 세밀하게 챙기고 보살피더라. 여성의 섬세함은 선수들이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선수단 단장과 선수촌장으로 다시 뭉친 이에리사 촌장에 대해 정 단장은 “너무나 든든한 존재”라고 말했다. “함께 일할 수 있어 안심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 정 단장과 이에리사 촌장은 이미 각종 회의 때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선수단의 경기력 향상에 대해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한국 여성스포츠회 부회장,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이사, 단양군청 탁구팀 감독, SBS 스포츠 해설위원 등 굵직한 명함을 갖고 있는 정 단장은 스포츠행정에 있어서도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정 단장은 “사실 지도자로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행복하지만 이번 아시안 게임에선 뜻밖의 기회가 주어졌다. 아시안게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최대한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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