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대학 학과에 따라 문학, 역사학, 철학을 범주에 넣지만, 사실 인문학을 딱히 규정짓기는 어렵다. 인문학(humanities)이란 말 자체가 라틴어 'humanitas(인간다움)'에서 비롯됐을진대, 인간과 관련되지 않은 공부란 것이 있을까. 문(文)·사(史)·철(哲)은 물론이거니와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정치학·경제학·의학·해부학도 인문학이었다.
말하자면 원래의 인문학은 거의 모든 학문분야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복잡다기한 학문 분화로 인해 인문학이 고유영역으로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점차 줄어든 것이다.
▦ 현재의 인문학을 규정하는 가장 유용한 관점은 니체에게서 얻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인문학은 '인간의 삶의 경험에 대한 이해와 그 의미 탐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성숙한 삶을 형성하게끔 해주는 학문'이다.
인간의 삶과 주변세계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성을 고양하는 실천적 공부라는 말로 이해된다. 여기엔 현실적 효용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개입돼 있지 않다. 그는 실제로 '일종의 교양을 위한 (인문학) 지식', 즉 지적 과시용 공부도 못마땅해 할 만큼 어떤 형태로든 구체적 쓰임새를 위한 인문학을 경멸했다.
▦ 그렇지만 인문학의 현실적 효용성이 대단했던 때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군주를 비롯, 모든 선비들이 필히 공부해야 했던 경전들은 그 자체가 심오하기 이를 데 없는 철학서이자 문학, 역사서였다. 과거시험도 철학과 역사에 대한 소양을 아름다운 글솜씨로 시(詩)·부(賦)에 담아내는 실력을 가늠하던 것이었다.
당대의 이름난 문필가나 대학자 대부분의 이름 뒤에 큼직한 관직명이 으레 따라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은 플라톤이 주창한 '철인(哲人)정치'를 구현한, 세계사적으로 거의 유일한 케이스라고 할 만하다.
▦ 그런데 인문학이 입신양명의 길은커녕, 입사시험에서도 외면 받는 천덕꾸러기가 됐으니 학자들로선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당초 실용성을 논할 학문이 아니라면, 약빠른 시장 논리만 탓하는 건 부질없다.
오히려 시장에 적극 뛰어들어 다양한 현실을 통찰하는 시각들을 제공하고, 학과의 벽을 허물어 학생 누구나 인문학에 쉽게 접근해 그 진정한 효용과 가치를 깨닫게 유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학이 저 고고한 곳에서 내려와 낮은 데로 임하는 것, 그게 인문학을 살리는 한 방법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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