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연장을 약속한 것처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공개 발언, 논란을 불렀다. 오는 연말인 파병기한의 연장을 국회를 통해 국민과 상의하지 않고 지레 미국에 약속부터 한 것은 뭐냐고 지적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파병 연장은 거론하지 않았으며, 방침도 결정된 게 없다고 부인했다. 진상을 알기 어렵지만, 이런 논란 자체가 쓸모없다고 본다. 기왕에 철군 주장이 나오는 자이툰 부대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가 할 일이다.
어느 사회나 해외 파병 논란은 명분과 실리가 숱한 부담을 무릅쓸 만한가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흔히 소홀히 넘겼다 뒤늦게 고민하는 것이 철군시기다. 전쟁 양상을 예측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당초 명분에 헛되이 집착하기 때문이다. 철군 전략(Exit Strategy), 발 빼기가 전쟁보다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교훈에 유념한다면, 파병 전에 벌인 논란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쟁과 참전 명분에 객관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얼마나 실리를 얻었는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그에 비추어 여러 부담을 계속 감당하는 것이 옳은지 지혜롭게 가늠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전쟁의 의미와 가치를 회의하고, 우리가 별로 득 본 게 없다고 선뜻 철군을 단행할 처지는 아니다. 애초 파병 결정을 좌우한 것이 동맹관계 고려이듯이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미국보다 우리 사회 보수여론이 더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까지 발을 뺀 전쟁에서 몇 천 병력이 평화재건 구호를 내건 채 실제는 자체 방어에 주력하는 기묘한 상황을 마냥 지속해야 옳은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동맹의 소중함을 외치는 것만으로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국가적 명분과 위상을 세울 수는 없다. 늘 오락가락하는 정부가 엇갈린 주장과 고려에 몰려 방침조차 정하지 못한다면, 사회라도 균형 잡힌 논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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