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TV토론에서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에 신중론을 펴왔으나 국민들이 완전 공개를 바라니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공익사업의 융통성과 민간사업의 인센티브 등을 고려해 원가 공개를 반대했으나 판교신도시와 서울 은평뉴타운의 고분양가 파문 등으로 빚어진 원성이 높아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합리적 원가 공개 방안을 줄곧 요구해온 우리는 대통령의 인식 전환을 일단 환영한다.
그러나 시장파급 효과가 큰 쟁점에 대해 대통령이 원가 공개의 장ㆍ단점과 후유증을 면밀히 따지거나 정부의 충분한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여론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은 실망스럽다.
본인이 "(원가 공개를 반대한) 전력이 있어 (예상되는 문제점에) 다 대답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원가 공개의 구체적 내역은 어디까지인지, 공개 대상에 민간부문도 포함하는 것인지, 원가 공개에 따른 공공부문의 적자와 민간부문의 위축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뭐 하나 분명한 것이 없다.
건설교통부조차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조만간 민ㆍ관 합동위원회를 만들어 문제를 잘 살펴보겠다"고 말할 뿐이다. 현행 규정은 공공택지에 한해 택지비 설계ㆍ감리비, 가산비용 등 7개 항목만 두루뭉수리하게 공개하게 돼 있다. 공개항목을 더 세분하고 사회적 합의로 공익적 이윤을 책정하라는 게 시민단체의 요구다. 이를 외면해온 정부나 업체가 머리를 맞대봐야 실효성있는 해법이 때맞춰 나오기는 어렵다.
어제까지 시장논리를 앞세우다 하루 아침에 뒤집은 노 대통령의 의지와 자신감도 확실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자찬하던 부동산 정책이 엉뚱하게 고분양가 사태를 낳자 마지못해 원가 공개로 돌아섰지만 침체된 건설경기에 미칠 타격을 생각하면 맘이 편할 리 없다.
그렇다 해도 분양가 원가 공개는 정부와 업체가 자초한 것이다. 시장 충격을 줄이는 지혜는 발휘해야겠지만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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