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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내가 아는 강원용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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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내가 아는 강원용 목사님

입력
2006.09.2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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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 타계한 우리 사회의 지도자 중 첫번째로 떠오르는 분은 역시 강원용 목사님이다.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경동교회를 나가면서 강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고, 당시 사귀던 화학과 후배 여학생은 강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기도 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 우리는 강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는 축복도 받았다.'

● 우주에서 창조주의 손길 찾아

20여년 만에 귀국해서 다시 경동교회에 나가 은퇴 후 명예목사로 가끔 설교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감회가 새로웠다. 1970년대 초에는 설교 중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 내용을 자주 인용하셨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는 빅뱅, 150억년의 우주 역사, 천억 개의 별 등 과학적 어휘들을 설교에서 가끔 언급하셨다. 심지어는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특유의 표현까지도 쓰셨고 그 분야의 관심사를 책으로 만들 꿈까지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직접 들었다.

종교인으로 남달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발언을 하셨던 강 목사님이 노년에 150억광년 규모의 우주에 관심을 기울이셨던 것을 보면서 어떻게 보면 문자적인 성경의 해석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도 있는 과학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역시 통이 크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은 유대교-기독교의 전통은 우주의 창조주가 있다는데 주안점이 있는 것이지 창조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강 목사님 설교에서 변화가 느껴지는 지난 30년의 세월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과학계 내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을 뿐 아니라 일반 사회 전반에 걸쳐서까지 폭넓게 확산된 인류 문명사에서 아주 특이한 기간이었다.

내가 가끔 방문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오늘의 천문 사진(Astronomy Picture of the Day)'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매일 새로운 천문 사진이 올라오고, 가끔 일간지에서도 허블우주망원경이 보내온 컬러 사진을 대할 수 있다. 나는 100억년 전 초기 우주의 사진인 'Hubble Ultra Deep Field'를 컴퓨터 초기화면으로 애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은행의 합병과 같은 대변화를 금융계의 빅뱅이라 부를 정도로, 대폭발로 시작된 우주의 기원을 나타내는 빅뱅이라는 단어는 이미 일상적인 어휘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정계에도 교육계에도 빅뱅이 필요한 듯하다.

최근 인문학의 위기가 새삼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인문학은 자고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 자체는 바뀌지 않는 영속성을 지닌다 하더라도 그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컨텍스트는 과학적 지식이 진보함에 따라 아울러 바뀌지 않을 수 없다.

● 인문학이 나아갈 길 보여준 분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세계는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로, 그리고 천상의 세계는 에테르라고 하는 제5원소로 만들어졌다고 믿었지만 그처럼 사실을 중시한 그가 오늘날 살았다면 누구보다 화학원소에 관한 주기율과 물질의 궁극적 입자에 관한 쿼크와 렙톤의 체계에 심취했을 것이 틀림없다.

과학적 우주관을 적극 수용하고 과학이 발견한 그 광대한 우주에서 창조주의 손길을 찾아보려 한 강원용 목사님의 자세에서 나는 인문학이 나아갈 길을 보는 듯하다. 인문학은 문자 그대로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나 인간에만 관심을 제한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 인간이 현재 위치에 있기까지 거쳐온 우주적 과정을 이해하고 그런 컨텍스트에서 현재 인간의 조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모색하는 것이 인문학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김희준ㆍ서울대 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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