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리즈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김선욱(18), 2004년 뉴욕 필과 협연하고 지난해 쇼팽 콩쿠르 결선에 진출했던 손열음(20). 차세대 피아니스트 쌍두마차로 꼽히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44) 교수의 제자라는 사실. 김선욱과 손열음은 똑같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예종 예비학교에서 김 교수의 지도를 받아왔고, 고교 과정을 건너뛰고 영재 선발 과정을 통해 예종에 입학해 배움을 계속했다.
김선욱의 우승 이틀 뒤인 26일 오후 서울 방배동 백석아트홀에서 만난 김 교수는 뜻밖에도 “기쁨보다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김선욱과 함께 리즈 콩쿠르에 나간 손열음이 결선 진출 문턱에서 미끄러졌기 때문. “잘된 쪽보다는 잘 안된 쪽에 더 마음이 쓰이잖아요. 열음이가 의기소침할까 걱정이에요.”
인터뷰 도중 김선욱에게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떠나기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어. 앞으로 말조심하고, 겸손해야 된다.” 조곤조곤한 김교수의 말에서는 애정이 듬뿍 배어나왔다.
콩쿠르는 목표가 아닌 수단
김선욱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11세 때 예비학교 지원하면서 지원서에 1지망부터 3지망까지 모두 김 교수의 이름을 적어낸 것. “지원서를 보고 ‘괴짜가 하나 왔구나’ 했죠. 첫 레슨 시간에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지휘자라고 답하길래 나가라고 했어요. 재주가 너무 많은 걸 알았기 때문에 중심을 잡아주려 했던 거죠.”
김 교수는 “많은 제자를 가르쳤지만 음악에 대한 애착과 집념에 관한 한 김선욱이 최고”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공연기획사 관계자들 사이에 ‘공연장 쫓아다니는 꼬마’로 유명세를 탔을 만큼 웬만한 연주회는 모두 섭렵했고, 음악 인생의 장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두었다. “선욱이는 테크닉이 대단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 앞에서 대화(연주)하기를 즐기는 아이죠. 하지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시간이 제한된 콩쿠르에서는 철저히 준비된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선욱과 손열음이 주목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점. 그만큼 한국의 음악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5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며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졌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 습득이 쉬워진 데다 수준 높은 연주회도 많이 열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다고 유학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외로움’을 통해 음악 세계가 한층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김선욱의 우승에 대한 지나친 호들갑에 대해선 우려를 나타냈다. “올림픽 금메달과 달리 음악 콩쿠르 우승은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그 이상을 담보하지는 않죠. 우리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1등을 하는 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럽긴 하지만 음악 하는 학생들의 목표가 콩쿠르가 될까 걱정입니다.”
성격까지 파악해서 가르친다
김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터득한 것은 ‘아이들은 생긴 대로 친다’는 것이다. “연주할 때 템포가 자꾸 빨라지는 아이는 틀림없이 말도 빠르고 걸음도 빨라요. 단순히 그렇게 치지 말라고 주입할 것이 아니라 습성을 고쳐야 해요. 곡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죠. 하지만 성격까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 지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승과 제자도 코드가 맞아야 해요.”
김선욱은 호기심이 너무 많아 진득하게 방에 들어앉아 연습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수시로 연락하면서 시시콜콜 시어머니 노릇을 했다. “선욱이가 말로는 ‘다 선생님 덕분’이라고 하지만 아마 속으로는 나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있을 걸요? 하하하.”
김 교수는 안식년이었던 지난해 김선욱이 대원문화재단의 대원예술상 수상으로 후원을 받게 되자 아예 한 학기 휴학을 시키고 뉴욕으로 데려갔다. 세상과 담을 쌓고 연습에만 몰두케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한 달도 못되서 뉴욕 지리를 다 익히더니 어느새 카네기홀에 가서 살다시피 하더군요. 절반의 성공이었죠.”
고교 교육을 건너뛰고 대학에 입학한 김선욱과 손열음이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두자 영재 과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영재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또래보다 음악 실력은 월등히 앞서지만 사고력은 뒤지는 게 보통”이라며 “가능하면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거치는 게 좋다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집이 원주여서 어릴 때부터 혼자 자취를 했던 열음이와 주관이 뚜렷한 선욱이는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아이들이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겁니다.”
김대진 교수는
서울대와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했다. 미국 클리블랜드 콩쿠르에서 1위를 하는 등 주목을 받다가 귀국, 94년부터 예종 교수로 일하고 있다. ‘베토벤 협주곡 전곡 1일 연주회’‘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회’등 다양한 기획 연주와 음반 출반으로 클래식 대중화에 힘써왔다. 다음달 14일 예술의 전당에서 청소년을 위한 ‘김대진의 음악교실’을 연다.
사진 배우한기자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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