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맹진사집에 잔치판이 벌어졌다. 마을 장정들이 푸지게 판을 벌인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예장동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이사장 김후란). 그런데 그 각설이들, 행색이 야릇하다. 영감님 각설이패다. 구성지게 한판 사설 펼치는 모양새는 거렁뱅이패가 울고 갈 판이다.
그 중 한 사람, 동덕여대 명예교수 조병무(70ㆍ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씨는 이곳에서 농민3, 친척2로 통한다. "내일은 수업이 빡빡하니 오늘 많이 해둬야 해요."
대부분 대학생 시절 어쩌다 연극 한번 해본 게 전부일 원로 작가ㆍ교수ㆍ평론가들이 남산 자락을 연극 연습의 열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 문학의 집 개관 5주년을 맞아 색다른 잔치판 준비로 떠들썩하다. 2001년 안기부장 공관을 리모델링, 예술인의 사랑방으로 거듭난 것으로는 성에 안 찬다는 듯.
19명의 문인들이 문인극 '맹진사 댁 경사'를 만든 것이다. 무대 앞에 받침대를 덧대 2평을 더 늘이고, 잔디밭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연 뒤 잔디밭에는 50여석의 의자를 더 놓아 손님을 맞을 참이다. 음향ㆍ조명 시설도 물론 보충한다.
최연장자인 황금찬(89ㆍ맹노인 역) 시인은 "1954년 명동극장에서 '살구꽃 핀다'로 닻을 올린 이래, 김동리 조연현 등과 가끔 문인 연극을 해왔다"고 돌이켰다.
시사프로 앵커 출신으로 잘 알려진 유자효(60ㆍ맹진사 역)씨는 정식 등단, 9번째 시집 '성자가 된 개'를 올 4월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32년 방송인의 길을 막 접고 무대에 오른 그는 "모두들 미워하는 맹진사에게도 선악이 공존한다는 사실에 초점 맞춰 연기하겠다"며 "SBS 이사직은 3월 사임했지만, 시인은 평생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가 못다한 연극에의 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석사 과정에 있는 아들이 잇고 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이근배(65) 시인은 머슴 삼돌이로 등장한다. 등단 이후 45년 동안
써온 기념시ㆍ축시만을 따로 모아 시집을 내기도 한 그는 "1984년 한 해 꼬박 한국일보에 매주 장편 서사시 '한강'을 연재했던 일은 아마 전무후무한 사건일 것"이라고 돌이키기도 했다.
일하고는 먹는 맛이 역시 최고다. 다들 간식 앞에 둘러앉는 모양을 본 김규은(61ㆍ유모 역) 시인이 한 마디 거든다. "맛있음 뭐해, 연기를 잘 해야지!" 한바탕 웃고는 또 연습이다. 본 공연은 29일 오후 6시30분, 30일 4시에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
문학의 집 개관 5주년 기념 행사는 이밖에도 한글 창제 560돌 기념 국제 심포지엄, 고은 시인이 참여하는 수요 문화광장, 음악이 있는 문학마당 등이 11월 25일까지 다채롭게 펼쳐진다. 문의 (02)778-1026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