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사과와 국회의 단상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도 헌법재판소장의 임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장의 고의성(?) 실언으로 법조계마저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법조 관련 이슈가 연달아 터져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사법민주주의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되지만, 과연 우리가 사법민주주의에 연착륙할 수 있는 사법구조와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 잇달아 터지는 법조 관련 이슈들
사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정치의 사법화는 불가피하다. 민주화 이전과 달리 보통 사람들도 정치권이 만드는 법이 공동체의 근본규약인 헌법의 정신에 위배되는지 따져 묻는다.
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 여와 야, 중앙과 지방이 일방적인 주종의 관계에서 벗어나면서 오히려 갈등과 대립이 증가하는데, 사법부가 법 해석을 통해 이를 해소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사법부의 영향력이 정치의 영역에까지 확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는 다시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한다. 사법부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사법부의 구성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증폭되고, 사회 제세력은 사법부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법부 역시 자신들이 내리는 판결의 중요성을 인식해 판결에 앞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감안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부재를 초래하고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퇴화시킬 것인지의 여부는 그 사회가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또 얼마나 존중하는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우리의 사법제도가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를 형성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헌법재판소만 해도 임기 6년인 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각각 3명씩 지명해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있는데,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지명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통령 임기 중 상당기간 헌법재판소의 3분의 2 이상을 대통령의 의중에 맞는 인물로 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법원 역시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최고의 숙고의 조직이어야 할 대법원마저 효율을 지향하는 행정조직과 같이 피라미드 조직을 취하고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대법원장을 통해 대통령이 사법부를 장악하고자 했던 유신헌법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개헌을 통해서만 근원적인 해결이 가능한데,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미국의 대법원처럼 종신직으로 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독일처럼 12년 임기에 3분의 1씩 교체한다고 하면, 정치적 독립성을 의심할 여지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대법원을 수평적이고 독립적인 조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임기 조정과 더불어 대법원장의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이 삭제되어야 하는 등 사법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 사법 중립성 보장 제도 마련해야
그러나 마음만 먹는다면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예컨대,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재판소장을 호선하도록 한 후 그 결과를 존중해 임명하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재판관 중에서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한다는 헌법 규정을 지키면서도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추천위원회의 결과를 존중해 그대로 제청권을 행사한다면 사법관료주의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직윤리법의 대법원시행규칙을 바꾸어 퇴직 후 재취업금지 대상을 자본금 50억원 이상이며 외형거래액이 연간 150억원 이상인 기업체로 제한해놓은 규정만 삭제해도 법조비리의 뿌리인 전관예우는 상당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부터 조용히 실천하는 리더십이 아쉬운 때다.
김민전ㆍ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