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첫 전후세대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탄생은 야스쿠니(靖國) 참배 문제 등으로 엉망이 된 한일관계에 위기이자 기회이다.
양국의 최대 현안은 중단된 정상회담을 재개하는 것이다. 양국 외교 관계자들은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다. 한국측 외교 관계자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달이 될 것”이라며 돌파구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재개 문제는 공이 일본측으로 넘어간 상황이라 한계가 있다. 야스쿠니(靖國) 문제로 중단된 정상회담은 이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재개되기 어렵다. 한일 정상회담의 재개는 아베 총리가 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론이 나오는 것은 전후 가장 오른쪽으로 기운 총리라고 평가 받고 있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다. 그는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해석과 북한, 독도 문제 등에 대해서도 초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다. 25, 26일 실시한 당과 내각 인사에서는 자신과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혈기 왕성한 소장파 정치가를 핵심 포스트에 배치했다. 아베 내각의 많은 각료들이 벌써부터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일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긍정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정치와 외교가 갖는 현실성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아시아 외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 국가라고 추켜세우는 등 애착을 보이고 있다. 정권의 운명을 쥘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으려면 외교문제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의 복원을 원하는 미국의 무언의 압력도 부담이다.
지난번 일본 해양조사선의 독도 해역 탐사 소동에서 그가 보여준 합리적 성향도 낙관론을 기대케 하는 요인이다. 그는 당시 탐사를 강행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막판 이례적으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을 한국에 파견, 정면충돌을 막았다는 것이다. 우익 정치인이었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개인적인 가정사도 긍정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입장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신념과 현실정치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현실정치를 선택한다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이전 한국과 중국 방문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못하면 내년 7월까지 아베식 ‘애매한 전략’을 고수할 것이다.
양국간의 정상회담이 재개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양국이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첫 걸음은 신뢰의 회복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