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구르고, 어설프고, 유치하고…. 한 때 한국 TV코미디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슬랩스틱과 시츄에이션 코미디가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의 옷을 입고 부활했다.
최근 인기 오락 프로그램들은 과장된 연기와 몸짓으로 웃음을 끌어내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정해진 상황 내에서 촌극을 빚는 시츄에이션 코미디를 적극 활용한다. MBC ‘황금어장’은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출연자들이 과장된 몸짓으로 재연, 시츄에이션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함께 보여준다. MBC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이 다양한 과제에 도전하며 벌이는 해프닝 역시 슬랩스틱 코미디다. 또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그룹 DJ DOC의 멤버 정재용이 거지 아랍인 등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해 웃음을 유발하고, m.net ‘슈퍼주니어의 자작극’에서는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가 드라마 ‘궁’의 상황을 코믹하게 바꾸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사연을 코믹하게 재연해 큰 인기를 모았던 SBS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도 시즌2 제작을 논의 중이다.
방송사들이 트렌드에 민감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개그콘서트’ 등 공개 코미디의 위세에 눌려 시들해진 슬랩스틱과 시츄에이션의 재활용에 나선 것은 오락 프로의 기존 장르와 뒤섞어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어장’은 시츄에이션 코미디와 토크쇼를 잘 배합했고, ‘재용이의 순결한 19’는 스타들의 실수 등을 보여주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면서도 정재용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연예정보 프로그램과 코미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무한도전’은 토크쇼와 슬랩스틱 코미디, 게임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쇼’라고 해도 무방하다. ‘무한도전’의 MC 유재석은 “때론 단순한 몸 동작 하나가 백마디 말보다 더 큰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황금어장’에서 옥주현이 그룹 신화의 열성 팬으로 신화의 춤을 코믹하게 추거나, ‘슈퍼주니어의 자작극’에서 슈퍼주니어가 코믹 연기를 보여주는 등 스타들의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런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코미디에 대한 고민 없이 인기 연예인을 활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변잡기식 토크가 식상해지자 연예인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주고 연기를 시킨 것인데, 숙련된 코미디언이 아니다 보니 어설픈 연기로 억지웃음을 끌어내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몇 년 째 연예인 짝짓기 등의 포맷을 반복하는 오락 프로그램 제작진의 창의력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문화평론가 이명석씨는 “제대로 된 코미디를 보여주는게 아니라면 기존의 컨셉에 코미디를 덧칠 하기보다는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오락 프로그램과 슬랩스틱 코미디의 만남은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과도기의 오락 프로그램이 코미디와 하는 ‘불안한 동거’인 셈이다.
객원 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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