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最古)의 문자인 상형문자가 ‘화석’이 아닌 ‘살아있는 언어’로 전해지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끝 자락, 중국 윈난성(雲南省) 리장(麗江)의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의 상형문자 ‘동파문’(東巴文)이다.
동파문은 서기 1,0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시적 생활을 하던 유목민족의 후예들이 히말라야의 오지에 정착하면서 자신들의 신화와 전설을 기록하고 제사 의식 등을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가령, 사람의 눈동자와 책 그리고 책과 눈 사이를 선으로 이어놓은 도안은 ‘읽는다’(왼쪽)는 뜻이고, 머리에 화관을 얹은 여자에게 꽃을 건네주는 남자가 나란히 앉아있는 그림은 ‘사랑하다’(오른쪽)는 뜻이다. 동물의 경우 몸 전체나 머리 부분을 그려 표시하는데, 말은 갈기, 돼지는 입, 호랑이는 얼룩무늬라는 특징을 살려 문자화 했다.
약 3,000자에 이르는 동파문 글자는, 나시족의 모든 정신적 유산을 담은 동파경(東巴經)과 희로애락을 기록하는 도구로, 동파(제사장)들이 제사 등 의식을 치를 때 읽는 경문으로 지금껏 전승돼왔다.
이 문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세기 중엽. 서양 탐험가들이 중국 변방을 여행하다 나시족과 그들의 고대왕국을 만나 이 기이한 문자체계를 보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는 리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동파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해두고 있다.
동파문의 역사가 1,00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문자들이 담고 있는 원시적 사유와 관념, 형상화 원리 등을 볼 때,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나 중국 은대의 갑골문자처럼 원시문자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언어학자들의 설명이다. 대진대 중국학과 홍희(아시아영상인류학연구소 소장) 교수는 “한자어 ‘흑’(黑)에 해당하는 동파어는 독(毒)이나 고달픔의 뜻을 갖고 있고, 한자어 ‘고’(苦)는 입으로 검은 물체를 밖으로 내뱉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등 밝음과 어두움에 대한 원시적 관념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며 “이 언어는 인류의 기억을 전하는 살아있는 문화”라고 말했다.
동파문은 독특한 도안과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색채의 예술성으로도 주목 받고 있다. 제단에 거는 그림, 문자와 신의 형상을 혼합해 나무에 그린 목패화, 두꺼운 종이에 채색으로 그린 지패화 등이 이 그림문자(혹은 문자그림)의 예술적 작품들이다. 오지의 고대왕국 리장은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고, 나시족은 동파문 문양을 활용한 각종 관광상품을 제작ㆍ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영상인류학연구소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내달 1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 ‘자인제노’에서 ‘신비의 그림문자, 동파문전(展)’을 연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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