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는 뉴스가 지난 주 언론에 제법 크게 보도됐다. 전문적 언론인의 시각으로 보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다. 아마도 이 뉴스가 사실이라고 건성으로나마 믿은 언론인은 전 세계에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사 간판을 내건 곳은 빼놓지 않고 뉴스를 실은 것은 좋게 말해 우습다. 다른 고려는 다 제쳐두더라도, 빈 라덴이 기왕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마당에 밑도 끝도 없는 장티푸스 사망설을 뉴스라고 전하는 무모함이 가소롭다 못해 부럽다.
■ 이럴 때 명색이 언론인들은 그런 뉴스가 어딘가 떴으니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도리라고 말한다. 이게 도무지 무책임하다. 스스로 그럴 듯 하다고 믿지 않는 이야기를 검증 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은 좋게 말해 안이하고, 정확하게는 진실보도보다 매체와 자신의 처세에 충실한 것이다.
뉴스의 진실성을 적극 천착해 논란을 부르기보다, 세상이 대세나 진실로 아는 사실과 논리와 명분을 추종하는 것이 이롭다고 여기는 기회주의다. 이런 언론 행태가 일반인들에게 빈 라덴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늘 헷갈리게 한다.
■ 본론을 얘기하면, 제대로 된 언론은 내심 빈 라덴의 실존 여부를 회의한다. 그에 관한 온갖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인류와 국가들이 본디 짊어진 근원적 갈등과 고뇌를 한 인간의 악덕 탓으로 규정한 논리는 보편적 상식과 분별력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9ㆍ11 이후 빈 라덴의 존재를 추적한 국제언론 가운데 가장 탁월한 독일 슈피겔 지는 진작에 빈 라덴은 허상이라고 결론지었다. 그걸 맹신해서가 아니라, 9ㆍ11 사태를 빌미 삼은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빈 라덴이 부각되는 배경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최근 사망설도 9ㆍ11 5주년에 즈음하여 나온 것을 먼저 주목해야 한다.
■ 빈 라덴의 실존을 가장 의심하게 하는 것은 미국과 서방을 비난하는 그의 성명이 비디오나 오디오 테이프로 국제 언론에 공개되는 현실이다.
미국과 각국 정보기관이 몇 년째 심혈을 기울였다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의 빈 라덴 추적을 밀착 취재한 것을 자랑하는 국제언론이 그런 테이프가 전달되는 경로에는 무지하고, 이걸 무소불위의 서방 정보기관이 추적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그야말로 희대의 스캔들이다.
이런 의문과 스캔들을 거론하는 것조차 막연한 권위와 우상에 대한 불경으로 여기는 우리 언론이 북한 핵에 관한 선전적 가상 칼럼을 대서특필한 것은 전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