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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오락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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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오락 공화국

입력
2006.09.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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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0대 남성 사망률은 세계 최고다. 한국인의 스트레스 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인의 자살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대학입시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해 매년 2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성적 문제로 자살을 한다. 한국인의 행복도는 세계 중하위권 수준이다.

● 전쟁 같은 한국인의 삶

이런 기록만 살펴보자면 한국은 지옥에 근접한 나라로 보이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지옥과 천국을 수시로 왔다갔다 할 정도로 나름대로의 대비책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은 세계 50대 교회 중 제1위를 포함하여 23개를 갖고 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겐 음주ㆍ섹스ㆍ도박ㆍ스포츠가 있다. 음주ㆍ섹스ㆍ도박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스포츠는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스포츠 국가주의에 열광하는 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더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오락이 있다. 영화는 히트만 쳤다 하면 천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인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비롯한 오락프로그램은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되 인터넷이 주로 오락용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등이다. 한국은 게임 강국이며, 비보이 문화의 새로운 종주국으로 떠올랐다. 오락 기능이 강한 각종 방(房) 문화의 발달도 세계 1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한국은 '오락 공화국'이다! 냉소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자는 뜻이다. 한류 열풍은 '오락 공화국'의 역량을 보여준 사건이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도, 민주주의를 박탈당한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도, 오락문화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으며 내내 번성했다. 한국인이야말로 이른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오락 공화국'은 한국인의 기질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땅 좁고 자원 없는 나라가 살 길은 근면과 경쟁 뿐이다. 한국은 그냥 생존하는 것만으론 만족하지 못하고 선진국 되는 걸 국가종교로 삼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그래서 택한 게 바로 '삶의 전쟁화'였다. 전쟁 하듯이 산다는 것이다. 그런 전쟁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오락이었다.

한국인들은 정치를 욕하지만, 정치야말로 고급 오락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욕하면서 즐기는 오락, 이건 오락의 최고봉이다. 특정 정치인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따르는 이른바 '빠' 문화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정치에 대해 말이 많지만 매우 재미있는 범국민 오락을 제공한다는 점에선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오락 공화국'에선 삶의 속도가 빠르다. 오락은 유행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싫증나게 만드는 건 죄악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런 속도전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속도의 폭력에 치이는 분야가 생겨났다.

인문학도 그런 분야 중 하나이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인문학만 위기인 건 아니다. 오락적 가치가 사회의 전 국면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오락적 효용이 떨어지는 건 모두 다 위기다. 신문을 보라.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대학교수들이 의외로 많다.

● 오락 외에는 대안 없나

문화관광부가 이름을 문화체육관광부로 바꾼다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세계 10대 레저스포츠 선진국 진입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라나. 한국은 이미 세계 1위의 '오락 공화국'인데, '세계 10위'를 목표로 삼다니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오락 공화국'은 한국적 삶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택한 대안이었겠지만, 이를 계속 밀어붙일 것인지 본격적인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기에 앞서 '오락 공화국'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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