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의 돌연한 사퇴를 두고 조직관리 문제나 내부 노선갈등 등 구구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통상기준에서 진보로 분류되는 인물임에도 급진적 시민·재야단체들이 그의 임명을 탐탁지 않게 평가했을 때부터 갈등의 소지가 배태돼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 결정이 자주 보혁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던 점에 비춰 일부 관측대로 만약 그마저 급진적 입장에 치여 사퇴한 것이라면 국가기관으로서 인권위가 추구하는 이념과 방향에 다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국가기관장 연쇄사퇴 현상이다. 최근 몇 달간 방위사업청장, 선관위원장, 방송위원장, 국세청장,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장 등이 줄줄이 물러났다. 속 사정이 분명히 드러난 바 없어 이들을 뭉뚱그려 말하긴 어렵지만, 연쇄사퇴 문제는 안이하게 볼 일이 결코 아니다.
우선 중책을 가벼이 던져 버리는 고위 공직자들의 무책임한 행동부터 비판받아 마땅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못해 먹겠다"는 식으로 본을 보인 바 있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쉽게 자리를 내던지는 것은 국정책임의 회피이자, 국민을 경시하는 태도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연쇄사퇴는 현 국정조직이 과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사실 경륜과 능력이 못 미치는 코드형 인물들이 도처에 포진, 조직과 위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은 한두 번 제기된 게 아니다. 연쇄 사퇴가 이런 공직사회 풍토와 무관치 않으리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그 동안 현 정권은 국정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을 줄곧 언론이나 일부 보수계층 등 외부요인에 돌려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쇄사퇴는 문제의 핵심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정권의 정책방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국가의 기본 틀마저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는 국민은 심히 불안하다. 청와대는 조 위원장 사퇴경위 조사에서 이런 근본문제까지 폭넓게 들여다보고 개선책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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