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뉴타운의 후분양제 전격 도입은 집값 안정에 약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독이 될 것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25일 은평 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시가 공급하는 공공아파트 분양 방식을 후분양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이번 대책이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후분양제는 현행 선분양제와 달리 건설업체의 부도 위험으로부터 수요자를 보호할 수 있고, 실제 공사한 비용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산출이 가능해 분양가를 적정선에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는 게 중론이다. 수요자들도 거의 다 지어진 새 아파트를 보고 청약할 수 있게 돼 건설업체들의 아파트품질 경쟁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시민단체에선 그 동안 선분양제와 관련, 건설업체들이 청약자들로부터 미리 돈을 받아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집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해왔다.
이 같은 긍정적 요인에도 불구, 일부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후분양제가 당장은 고분양가 논란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론 오히려 분양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시장 불안 요인을 키우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양가 인하 효과 불투명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시 대책이 고분양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논란의 핵심인 ‘고분양가’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부연구위원은 “후분양제로 전환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고분양가 논란은 선분양이냐, 후분양이냐는 선택의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며 “공공개발 아파트의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다각도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착공과 동시에 일반분양을 하는 현행 선분양 제도에서는 땅값과 공사비를 분양자들이 내는 중도금으로 충당해왔지만, 후분양을 하면 계약금과 중도금이 1년 이상 늦게 들어와 그 기간의 공사비를 모두 사업자가 대출 등으로 충당해야 한다. 결국 늘어난 금융비용은 분양가로 전가돼 분양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도 이와 관련 “후분양제가 도입될 경우 금융비용에 따라 평당 15만원 가량의 분양가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시가 공급하는 아파트의 분양가는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분양가 산정위원회의 공개검증을 통해 분양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방안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과거 서울시 동시분양 업체들을 상대로 시민단체를 통한 분양원가 검증을 실시했지만 분양가 인하 효과가 크지 않았다. 고분양가 지적을 받은 업체들도 주변 시세와 비슷한 수준에서 인하 시늉만 하고 그치기가 일쑤였다.
분양 원가 공개 및 상한제도 시급
후분양제 도입은 중장기적으로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기존 주택 가격만 들쑤시는 등 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존 시세와 분양가는 상호 작용을 하기 마련인데, 후분양을 하더라도 분양가가 낮아지지 않는다면 인근 지역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만 길어질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컨설팅업체 유엔알 박상언 대표는 “분양가를 낮추지 못하면서 단순히 분양시기만 늦추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판교신도시 중소형 평형 분양이 당초 2005년 6월에서 11월로, 다시 올해 4월로 연기되는 과정에서 용인, 분당 등 주변 아파트값만 크게 상승했던 전례가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 상한제 등도 동시에 추진해서 분양가를 낮춰야 한다”며 “아울러 공공이 공급하는 주택을 실질적으로 서민들이 분양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금부담을 우려해 후분양제를 기피해온 민간업체들이 후분양제로 분양방식을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인센티브 제공도 필요하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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