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기소하면서 A4용지 1~2매 분량의 공소장만 법원에 제출한다. 법관은 첫 재판이 시작할 때까지 피고인이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명목으로 뇌물을 받았는지 개요만 알 수 있다. 법관은 백지 상태에서 피고인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신문 내용을 듣는다. 다음 재판부터 피고인에게 뇌물을 준 사람과 돈 전달에 관여한 사람, 이를 목격한 사람들을 차례로 불러 검찰의 공소사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살핀다. 공방이 길어지고 법정에 부를 사람이 많아지면 자칫 재판은 1년을 넘길 수 있다.
지금까지 법관은 피고인을 첫 대면하기 전에 사건의 윤곽을 대부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유ㆍ무죄에 대한 판단까지도 가능했다. 검찰이 공소장뿐 아니라 피고인과 참고인, 증인 등을 조사한 자세한 기록을 미리 법원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변호인도 제출된 기록을 보면서 첫 재판 전에 변론을 준비했다. 참고인과 증인이 법정에 나와 어떤 진술을 할지 알 수 있어 변론이 그만큼 수월했다.
모든 사건으로 공판중심주의가 확대될 경우 검찰 못지않게 법원과 변호사 역시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다. 현재 법관 인력으로는 지금보다 몇 배 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법원이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한 이후 철저한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해 재판을 한 것은 몇 건 안 된다. 실제 일부 지방 법관들은 공판중심주의를 꺼리기도 한다. 검찰이 25일 공판중심주의를 전격 확대하기로 한 데에는 “이왕 할 바엔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검찰이 형사사건과 관련된 민사사건에 원칙적으로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법원이 민사재판에서 증거를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계좌추적 등으로 단련된 검찰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기 피해자가 민ㆍ형사 소송을 함께 냈을 때 형사재판에서는 사기 피의자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민사재판에서는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 간 ‘엇박자’가 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이 민사재판부에 제출한 수사기록은 2,600건에 달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판중심주의의 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법원과 검찰이 협조해야 한다”며 “감정싸움으로 번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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