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민도 여행을 하고, 문인들은 정원 가꾸기에 매료됐으며, 가정은 친밀한 생활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실학이 사회개혁사상으로 등장한 조선 후기의 변화들이다. ‘실학ㆍ일상ㆍ문화-실학은 인간의 삶에 어떻게 다가섰는가’를 주제로 경기문화재단과 한국실학학회가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실학학술회의는 실학 사상이 가져온 당대인의 삶과 일상의 변화를 살피는 자리였다.
심경호 고려대 교수는 여행의 변화를 주목했다. 조선 중기만 해도 여행은 상층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실학이 등장한 뒤에는 하층민도 여행을 했다. 18세기 문인이자 화가인 강세황이 장사꾼, 품팔이, 시골 노파까지 금강산을 갔다 오지 않으면 사람 축에 끼지 못하게 됐다며 ‘산에 다니는 것은 인간으로서 첫째 가는 고상한 일이지만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은 가장 저속한 일’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일부 지식인은 중국, 일본 등 국외로 눈을 돌렸다. 정약용이 고조선과 낙랑, 맥국의 관계를 밝히겠다며 춘천을 여행한 것처럼, 실사구시의 답사여행도 활발해졌다.
전통술 품평가 허시명씨는 술을 보는 실학자의 다양한 시각을 소개했다. 실학자 가운데 이수광은 술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술을 범죄를 충동질하고 곡식을 축 내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음식, 문화, 정치ㆍ사회적 지표로 파악한 것이다. 반면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술이라는 음식이 사람에게 단 한 가지도 유익이 된다는 점을 알지 못하겠다”고 단정할 정도로 부정적이었다. 그는 농본주의자답게 “나라에 흉년이 있을 때 반드시 술을 금하게 하는 것은 식량을 축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며 “내가 죽거든 제사에 예만 쓰고 술은 쓰지 말라”고 했다.
심우경 고려대 교수는 “당시 문인들은 꽃 심고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화훼 서적을 집필하고 문집에 자신의 정원 이름을 자주 등장시켰다. ‘평생의 소망’이라는 글에서 주거 공간 주변에 나무를 심고 기르려는 꿈을 밝힌 장혼처럼, 정원을 가꿀 형편이 못 되면 상상 속의 정원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이들은 식물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 뺨쳤으며, 품종을 구분해 명시하거나 방한 시설 혹은 온실을 지어 식물이 겨울을 나게 하는 등 과학적 지식을 동원했다. 채소 약초 과수 등 실용적인 나무를 선호한 것도 특징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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