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산업은행에 대해 대우증권과 산은캐피탈, 산은자산운용, 한국인프라운용 등 금융 5개 자회사를 매각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산은 측은 "금융 자회사는 향후 국제투자은행으로 변모하는데 있어 중요한 축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해 말부터 산업은행과 한국은행 등 금융 공기업에 대한 감사를 벌여 최근 감사결과를 금융기관에 통보했으며 26일 감사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전윤철 감사원장은 최근 "한국은행은 지점 및 해외사무소 축소를 각오해야 하고 산업은행도 달라진 시대 성격에 맞춰 변모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특히 산은에 대한 자회사 매각 권고는 산은의 정체성과 관련, 민간 부문 업무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여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재정경제부는 학계와 금융계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연말까지 산은 등 국책은행 개편방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이번 권고사항이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 개편론은 금융계의 해묵은 과제로, 산은의 역할 축소론과 역할 강화론이 맞서고 있다. 산은은 1960~80년대 개발 경제시대에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정책금융 창구로서 큰 역할을 했지만 90년대 이후 정부 주도 경제개발이 시장 경제로 전환되면서 역할이 모호해졌다.
정책금융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외환위기 이후로는 회사채 인수, 파생금융상품, M&A 자문,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민간영역의 투자은행(IB) 업무에 주력해왔던 것.
그러나 설립취지와 다른 업무로 인해 "정부의 힘을 갖고 민간 영역을 침해, 민간 영역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반발을 사 '산은 해체론'까지 나오기도 했다. 감사원의 자회사 매각 권고는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셈이다.
그러나 IB 시장이 커지고 글로벌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산은의 역할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내 취약한 IB 업무를 선도해 외국 금융회사로부터 국내 시장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기관들이 소매금융에만 치중하는 상황에서 산은은 파생상품, M&A 등에 힘을 써오면서 외국계와 경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금융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은은 이와 함께 "시장 위기 관리와 통일을 대비한 북한 지원 사업 등 정책금융의 영역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은은 내심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면서도 동남아 최대 투자은행으로 성장한 싱가포르개발은행을 청사진으로 상정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 위기 관리라는 공적 역할과 IB 업무라는 민간 부문이 상충된다는 점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산은의 두 가지 기능이 각각 일리가 있다"며 "그러나 두 기능을 병행하는 데는 심각한 충돌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에 두 부문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적 역할은 살려두면서 IB 부문은 점진적으로 민영화해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란 것이다.
감사원 권고는 산은에 상당한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감사원 권고는 강제 이행사항이 아니다"며 "구조개편은 재경부와 함께 논의할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향후 국정감사 등이 이어지면서 국회와 시장 등의 압박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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