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둘러싼 장하성 펀드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태광그룹이 수익성이 높은 시스템통합(SI) 사업부문을 이호진 회장의 개인회사로 빼돌린 뒤 이 회사 지분을 편법적으로 2세에게 증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태광시스템즈는 올 1월25일 기존 주식의 96%에 해당하는 9,600주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그러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던 이 회장은 실권했고, 이 주식은 주당 1만8,955원에 아들 이현준씨에게 제3자 배정을 통해 넘어갔다. 이에 따라 이 회장과 아들 이씨의 지분비율은 각각 51%와 49%가 됐다. 태광시스템즈는 이후 4월에 각각 1차례씩 주주배정 유상증자, 무상증자를 거치며 총 주식수가 6만주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태광산업과 그룹 계열사들이 가져갔어야 할 SI부문 사업기회를 이 회장의 개인회사가 가로챈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2세에 대한 편법 증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태광시스템즈는 2004년 태광산업의 SI사업 부문을 분사해 만든 회사로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 한국도서보급 및 유선방송업체들의 관련사업을 맡으면서 매출액이 2004년 32억원에서 2005년 289억원으로 급증했다.
천안방송을 비롯한 수많은 유선방송사를 계열사로 거느린 태광그룹이 미디어쪽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 계열사들의 SI사업 부문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별다른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그룹 계열사로부터 사업수주를 할 수 있는 태광시스템즈의 지분을 이 회장 일가가 독식한 것은 대주주가 회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챈 것이라는 지적이다.
회사의 사업기회를 대주주 개인 회사에 몰아주었다는 점에서 현대차 사태에서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됐던 글로비스와 닮은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대주주인 글로비스는 계열사들의 물류사업 독식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인 뒤 상장 전 막대한 현금 및 주식 배당을 실시해 정 회장 부자의 재산 증식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태광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한국도서보급의 지분구조에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태광그룹 계열사 한빛기남방송이 2003년 두산으로부터 인수한 이 회사는 매년 적자를 내다가 지난해 상품권 시장이 급팽창하며 71억원 흑자로 반전했고 자본잠식도 해소됐다. 그러나 이처럼 높아진 한국도서보급의 기업가치에도 불구하고 한빛기남방송은 2005년 보유 지분 전량을 이 회장 부자에게 최초 취득가격으로 넘겼다.
그러나 태광 그룹 측은 “대기업 계열의 SI회사와 비교하면 태광시스템즈는 그룹 내에서 수주할 수 있는 물량 규모가 작아 수익성이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다”며 “회사 설립과정이나 증자과정에 법적인 문제도 없다”고 해명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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