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중추기관은 법원이고 검찰이나 변협은 보조기관’이라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 이후 일선 법원에 ‘탈(脫) 법조 3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이상훈(50ㆍ사시 19회)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는 22일 후배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판사는 검사, 변호사와 같은 배를 탄 동지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이 부장판사는 국내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재판부를 총괄한다.
이 부장판사는 이메일에서 “법조 3륜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사라졌어야 한다”며 “전혀 다른 직역(職域)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달갑지 않은 동료의식을 내세우는 표현 같아서 유쾌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부장판사는 “검찰이나 경찰이 조서를 진술한 그대로 잘 작성해준다면 어찌 조서를 ‘꾸민다’고 할 것이며, 전심전력으로 나를 도와줄 변호사를 왜 시장에서 물건 사듯이 ‘산다’고 하는 것인지 검찰과 변호사 단체는 반성해 봐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법조 3륜’은 사법기수와 학맥으로 긴밀히 연결돼 늘 한 목소리를 내 왔던 터라 이 부장판사처럼 검사와 변호사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과거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일선 법원에서 ‘판사가 더 이상 검사, 변호사와 같은 위상에서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고도 볼 수 있다.
법원의 이 같은 움직임은 공판중심주의 강화 추세와 관련이 깊다. 검찰 조서보다 법정에서의 증언을 통해 유ㆍ무죄를 판단한다는 공판중심주의 제도 아래에서는 자연스럽게 법관의 위상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공판중심주의는 법관의 역할을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과 변호사 단체의 반응은 그리 곱지 않다. 먼저 법조 3륜은 법원 검찰 변협이 각각 별도의 역할이 있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원활한 사법작용이 이뤄진다는 용어에 불과한데 법원이 위상차를 논하며 이러한 수사적(修辭的) 용어조차 부정한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법조 3륜 각자의 영역이 있는 것이지 위아래를 운운하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사법시험이라는 동일한 통로로 배출되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공판중심주의라는 사법제도의 큰 변화가 진행 중이고 이미 변호사 단체와 검찰의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여서 과거와 같은 ‘행복한 동거’로 돌아가긴 쉽지 않아 보인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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