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치매' 가족이 함께 앓는 질병, 사회가 함께 하면 희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치매' 가족이 함께 앓는 질병, 사회가 함께 하면 희망

입력
2006.09.24 23:57
0 0

“치매는 불치병이 아닙니다. 가족과 온 사회가 당당히 맞서 싸운다면 환자는 물론, 가족의 고통을 크게 덜어 줄 수 있습니다.”

23일 경기 가평군 아침고요수목원. 좀처럼 집 밖으로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한국치매가족협회가 KT&G복지재단의 후원으로 세계 치매의 날(21일)을 맞아 마련한 가족여행에 참여한 47명의 치매환자와 가족들이다.

이들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을 끊게 하고 형제간의 우의를 상하게 한다는 무서운 질병인 치매의 고통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금세 ‘한 가족’이 됐다.

"치매는 고통이 아니라 복이야"

최진호(66ㆍ가명)씨는 혼자서는 제대로 발걸음조차 옮기지 못하는 아내(62)의 팔을 꼭 잡고 산책을 하면서 “치매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며 “아내가 좋고 싫은 것을 분간할 수 있을 때 더 잘해 주지 못한 게 한”이라고 말했다. 함선영(52ㆍ가명)씨는 남편(56)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듯 보였다.

그는 “처음에는 사소한 일까지 내게 의존하려고 해서 짜증을 냈다”며 “그게 치매의 초기 증상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함씨는 “남편이 간단한 계산도 못해 울먹이는 것을 볼 때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아직 환갑도 되지 않은 사람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2년 전 치매를 앓던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박희섭(78ㆍ가명) 할아버지는 “아내가 좋아하던 꽃”이라며 장미꽃 브로치를 가족들에게 달아 주며 말했다. 그는 “아내가 건강할 때는 바쁘게만 사느라 오히려 불행했던 것 같다”며 “발병 후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주기 위해 요리사자격증도 따고 매일 복지관도 같이 다니면서 오히려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고 회상했다.

치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환자와 가족들은 22일 밤 한 손에 촛불을 든 채 ‘사랑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등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희망을 나누었다.

그러나 치매는 개인 또는 가정의 불행으로 그치는 병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8.3%(약 36만명)가 치매를 앓고 있다.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됨에 따라 2020년에는 치매환자가 64만9,000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전에 치매 증세가 나타나는 ‘초로기 치매’에 대해서는 아직 기초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치매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전혀 없다. 치매가족협회 백소영 사무국장은 “치매는 환자의 인격이 변하는 질병이라는 점에서 가족에게 심한 고통을 준다”며 “치매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앓는 질병”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죽고 싶은데 치매환자 때문에 못 죽고 있다’는 가족의 하소연이 적지 않다”며 “치매를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난 문제로 보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