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한산 자락의 환기미술관이 빛과 색채의 마술에 걸렸다.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거나, 조각 조각 흩어진 형태가 어느 지점에서 보면 하나로 완성되기도 하는 아름답고 신기한 작품들이 미술관 전체를 멋진 신세계로 바꿔놓았다.
‘공간의 시학’ 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전시는 다니엘 뷔랑(67), 프랑수아 모를레(80), 펠리체 바리니(53), 스테판 다플롱(34) 등 네 명의 프랑스 작가의 ‘인 시투’(In Situㆍ‘제자리에, 본래의 장소에’라는 뜻) 작업을 보여준다. ‘인 시투’ 는 특정 장소를 위한, 그 공간에만 맞는 미술이다. 작품을 만든 다음 어딘가에 갖다 놓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인 시투’는 공간의 특성이 작품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독특한 작업이다.
다니엘 뷔랑은 햇빛이 연출하는 색채의 잔치를 베풀었다. 1층의 한 쪽 벽 높은 곳에 난 큰 창문에 파란 색, 빨간 색의 투명 컬러 시트를 붙였다. 햇빛이 이 창으로 들어와 반대편 벽과 바닥에 그리는 그림자는 햇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환기미술관 큐레이터 이꼬까 씨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보면 가장 멋있다”고 일러준다.
3층을 차지한 뷔랑의 또다른 작품 ‘셋, 넷, 다섯… 무한대로 섞이는 두 가지 색’은 노란 색과 파란 색 투명 아크릴 판 수 십 개를 칸막이처럼 세웠다. 햇빛은 여기에 부딪히고 겹쳐서 빨강, 보라, 녹색 등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내며 빛의 마술을 펼친다. 뷔랑은 최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관 초대전을 한 세계적 작가다.
펠리체 바리니의 드로잉은 2개 층에 조각난 채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이게 뭐지’하고 오르락내리락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지점에 서면, 놀랍게도 하나로 모아진다. 7개의 작은 원을 품은 노란 타원형(‘7개의 원반으로 도려낸 타원형’), 파랑 검정 빨강 3개의 장방형(‘조율이 잘못된 3개의 장방형’)이 나타난다. 3차원 입체공간이 평면 캔버스처럼 변신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은 숨바꼭질 놀이처럼 즐겁다.
스테판 다플롱은 단순한 색과 도형만으로도 공간이 얼마나 새롭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살짝 휜 벽면을 따라 녹색과 파랑을 변주하는 색상 띠를 길게 그리고 그 안쪽 방에 네 가지 색, 네 개의 사각형을 마름모꼴로 설치했다. 극히 간결한 아름다움이 매혹적이다.
1층에는 프랑수아 모를레의 네온 작품이 있다. 높은음자리처럼 보이는, 펼치면 지름 5m의 원이 되는 구겨진 네온 튜브에 ‘라망타블’(lamentableㆍ ‘한심한’이란 뜻)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나, 바닥과 3개의 벽이 합작해서 11개의 파란 네온 튜브로 작품을 이루게 만든 ‘노엔드네온’(Noendneon)이 흥미롭다. ‘노엔드네온’은 거꾸로 읽어도 ‘노엔드네온’이다.
전시에 참여한 네 작가는 한국에서 만나기 힘든 유명 작가들이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으로 전시가 성사됐다. 12월 3일까지. (02)391-7701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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