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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문학적인 연극 '임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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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문학적인 연극 '임차인'

입력
2006.09.2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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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더러 “참 문학적이다”라고 하면 상찬인가, 허물을 들추는 것인가? 문학과 극이 겹쳐지고 갈라서는 지점에 대해 생각케 하는 한 편의 연극이 있다. 극단 파티의 ‘임차인’(윤영선 작ㆍ연출). 이 연극의 출발이 되는 창작의 모티브는 다분히 문학적이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임차인이란 ‘남의 기억과 마음을 빌려 쓰는 사람’이다.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작가가 주관으로 포착한 비유적 언어다.

우리는 시간을 잡아두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기억을 포박해 두자는 것이다. 무대는 그렇게 기억을 붙잡아두려는 네 개의 사진틀로 채워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네 개의 삽화가 각각 펼쳐진다. 봄과 여름의 삽화는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담화 속에 깃든 폭력성을 희극적으로 좇는다.

‘임차인’은 여기서 문학적 비유를 버리고, 남의 시간과 마음을 자기 기억과 마음으로 제멋대로 가져다 쓰는 인물의 ‘성격’과 ‘상황’의 연극성으로 나아간다. 관계가 ‘권력’이 되는 순간을 흥미롭게 포착하면서, 우리 삶의 물리적인 양태를 무대 위에 ‘구조화’해내는데 이르는 것이다.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그리고 곡예 운전 중인 운전자와 승객 그 관계에서 말이란 때로 ‘대화’를 가장한, 권력을 지닌 자의 일방적 담화 ‘독백’이 된다.

연극은 이를 폭로한다. 하지만 가을과 겨울 삽화에서는 수사와 비유를 앞세워 상황과 인물에 대해 관객의 생각이 스스로 자라도록 허용하지 못하고 ‘제시’가 아닌 ‘설명’을 택한다. 봄ㆍ여름 대목에서는 말이 인물이나 상황에 적절히 맞아 들어가는 재미를 관객에게 제공하더니, 가을ㆍ겨울 쪽에 이르면 이 힘이 현저히 떨어진다.

가을 부분에서는 부부의 저녁 시간 한 때를 다루는데 아내를 못 잊는 사내의 출현으로 인해 부부 사이에 감도는 폭력과 집착을 그린다. 그리고 이를 남편이 바닷가에서 잡아온 ‘게’(蟹)라는 이미지에 기대어 펼쳐보지만 극적 힘을 만들어내기엔 역부족이다. ‘게’처럼 숨고 매달리는 마음을 ‘언어’를 통해 붙들려 애쓰지만, 이 말들은 비유와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헛돈다. 겨울 삽화 역시 마찬가지다. 수몰된 마을 물 밑에 두고 온 기억에 대한 ‘개’(犬)의 말솜씨는 재현을 통해 보여주기(제시)가 아닌 말하기(설명)로 채워지므로 연극은 아무래도 극적 힘을 잃고 헐렁해진다.

연극은 그렇게 관객의 자리를 ‘빌려 와’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을 풀어 놓는다. 관객 역시 무대 위 말들을 ‘임차‘해 자신들의 기억과 삶을 반추하기에 ‘임차인’이란 우리 삶의 존재 조건이면서 또한 이 연극의 존재 조건이 된다.

배우의 힘에 의해 에피소드가 넘어가고, 멈칫거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임차인’은 문학적이되 ‘연극’임을 증명하는 연극이기도 하다. 10월 1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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