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드 아미리 등 지음, 자카리아 무함마드ㆍ오수연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발행ㆍ9,800원
‘인류’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생물학적 동질성 하나로 학살자와 피학살자, 억압자와 피억압자를 동일한 가치 안에 포섭할 때 ‘인류’라는 말은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가. 강자(强者)가 말하는 정의, 수갑 안의 자유는 어떠하며, 국제법의 형평, 종교 안의 사랑은 또 얼마나 무기력하고 기만적인가.
금세기 야만의 가장 무거운 짐을 고독하게 짊어져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9명의 팔레스타인 작가가 산문으로 전한 책 ‘팔레스타인의 눈물’이 출간됐다..
이 책은 소설가 오수연씨와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모함마드씨가 기획했다. 오씨는 2003년 이라크전 때 파견작가 겸 국제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현지를 다녀왔고 이후로도 중동과의 인연을 이어오다 올해초 양국 예술가 및 평화운동가들의 모임인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thebridgetopalestine@gmail.com)를 출범시킨, 중동 메신저다.
책의 글들을 각각 개성있는 언어로 팔레스타인의 현실-세기를 이어 겪어왔고 또 겪고있는 몸과 내면의 상처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아는 우리는 책의 글을 읽으며 각각이 이룬 문학적 성취에 앞서 그 상처의 실체적 진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이스라엘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갈가리 찢긴 땅, 점령군의 검문소 앞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시작하는 일상, 모욕과 조롱과 폭력과 약탈, 그리고 학살…. 군인에게 돌팔매질을 한 소년들을 붙잡아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개머리판으로 팔을 분지르는 참경(慘景) 대신 복면 쓴 무장 전사와 자살특공대들의 모습만 방영하는 방송, 그리하여 ‘점령군의 학살’이 아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이데올로그들의 농간.
필자들은 보고와 고발의 문장이 아니라 상징과 은유, 풍자의 언어로 이 현실을 에둘러 전한다. ‘취한 새’에서 자카리아 무함마드(시인ㆍ소설가)는 “목을 틀어 뒤를 바라보는” 신화 속의 새 ‘필리스트’에 자신과 600만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을 투영한다. “나도 이 새처럼 뒤를,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들이 제 땅에 있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면서 바람을 돌파하기 위해 목을 뒤로 돌리는 타조가 필리스트의 기원은 아닐까, 그의 생각은 이어진다. “(그렇다면) 필리스트 새는 단지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더 잘 달리려고 고개를 뒤로 돌리는 것이다.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뒤를 보는 것이다.”
풍자로 슬픔을 전하기도 한다. ‘개 같은 인생’에서 수아드 아미리(작가ㆍ건축학자)는 개 예방접종을 위해 예루살렘 병원을 찾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 주민인 그는 검문소를 통과하려면 두 가지 허가증과 모욕적인 검문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예루살렘 병원이 발급한 진료증명서를 지닌 개는 사정이 다르다. 그는 어엿한 예루살렘의 주인이다. 뒷날 동물병원을 가면서 그는 군인에게 개의 ‘여권’을 내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개의 운전사예요. 보시다시피 이 개는 예루살렘 개인데, 운전을 못해서…”
긴 망명생활 끝에 귀환한 팔레스타인 지식인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다룬 모리드 바르구티의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와 자카리아의 ‘귀환’, 검문을 받아가며 친구들을 방문하는 작가의 내면을 소설처럼 그린 아디니아 쉬불리의 ‘먼지’, 아라파트의 장례식 풍경을 풍자적으로 전한 수아리의 글, PLO와 무장 ‘하마스’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애증을 이야기한 말리 제인의 글 등 하나하나가 울컥하는 감동을 전한다.
‘나는 라말라를…’의 필자 모리드는 “총은 우리에게서 시의 땅을 빼앗아가고 땅에 대한 시를 남겼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오수연씨는 ‘옮긴이의 말’에 “희망은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고 썼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땅의 시’, 그리고 ‘가물거리는 희망’들이 실현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인류’와 ‘자유’와 ‘정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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