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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탁신 축출 아쉽네"

입력
2006.09.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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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廣東)인의 후예 탁신 치나왓 태국 전 총리의 축출을 바라보는 중국의 심사가 편지 않다. 중_태국 관계를 ‘형제 관계’로 부른 탁신의 집권기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20일 “태국 국내 정세 변화는 태국의 일”이라며 내정불간섭 원칙을 밝혔다. 다만 “양국은 좋은 이웃”이라고 표현, 간접적으로 아쉬움을 표시했다. 중국 언론들도 탁신의 거취 등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상황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태국 쿠데타는 중국에게 분명 좋지 않은 뉴스이다. 2001년 집권 이래 탁신 정부는 중국과 너무 친하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관계가 좋았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중 중국과 가장 가까운 국가는 단연 태국이었다.

탁신 정부 이전에도 양국 관계는 특별했다. 1975년 수교한 양국은 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당시 베트남을 견제하는 사실상의 동맹이었다. 베트남군 철수 이후 태국은 중국을 경제성장의 배후지로 규정하고, 중국은 태국을 쓰촨(四川), 윈난(雲南)성 등 남부의 경제 파트너로 설정하면서 동반자 관계로 성장했다.

양국 관계가 특별하게 발전한 배경은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아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달리 국경분쟁이 없다는 점, 태국 화교들과 태국 국민간 갈등이 없다는 점이 주 요인이다. 특히 1997년 태국의 외환위기 중국은 까다롭게 굴던 미국과 달리 무조건적으로 태국을 지원했다.

조부모가 모두 광둥성 출신인 탁신 전 총리는 2003년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2001년 65억 달러였던 양국 무역규모를 2005년 202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탁신은 총리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중국을 선택했다. 2005년 중국을 찾은 탁신은 “양국은 형제와도 같은 나라”라고 선언했다. 탁신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고수, 대만 관리가 태국 땅을 거의 밟지 못하게 했고, 중국 정부가 질색하는 파룬궁(法輪功) 국제 집회를 태국에서 열지 못하도록 했다. 그 대가로 중국은 탁신이 아세안의 지도자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군사관계의 밀월도 진행됐다. 태국은 탁신 정부 출범 이후 중국제 무기 수입 범위를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확대했다. 2002년 이후에는 양국 국방장관급 회담을 개최하고 있다. 2005년 10월 양국 해군은 공동 훈련을 진행했다. 물론 태국은 중국과의 밀월을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군사 동맹 관계를 강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오는 전략도 구사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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