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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그는 독재자인가 혁명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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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그는 독재자인가 혁명가인가

입력
2006.09.2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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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고트 지음ㆍ황건 옮김 / 당대 발행ㆍ1만4,000원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세계의 주인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인민을 지배, 착취, 약탈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52)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일 유엔 총회에서 부시와 미국을 싸잡아 비난했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일요일 아침 TV에 나와 “부시, 당신은 지구 별에서 가장 나쁜 놈이다”고 외쳐대는 그를 언론은 선동가, 독재자라고 부르고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렇게 형편없는 인물이라면 어떻게 선거에서 연전연승, 12년이나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쿠데타로 물러났다 대중의 힘에 의해 이틀 만에 복귀한 사실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 리처드 고트는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를 자처한다. 영국 ‘가디언’지 남미 특파원으로, 체 게바라의 체포ㆍ살해 현장을 목격하고 시신을 확인한 좌파 언론인이다.

차베스는 정치인의 피를 타고 났다. 아버지, 어머니는 교사로 정치에 적극적이었고 대학교수인 형은 제헌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외고조부는 19세기 중반 게릴라 대장으로 활약했고 외고조부의 아들은 독재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차베스는 사관학교 졸업 후 극좌파 게릴라 진압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이 무렵 상대 게릴라에게 공감을 갖기 시작했다. 예산 횡령, 장비 절도 등 군대 내 부패를 목격하고 직접 혁명군 조직을 시도하기도 했다. 차베스를 포함, 언젠가 자신들이 나라를 맡을 것이라고 믿은 젊은 장교들이 92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한다. 항복한 차베스는 동료들에게 “우리의 목표가 지금 당장은 수도에서 이뤄지지 못했다”며 투항을 권유했다.

차베스는 혁명 대신 선거에 뛰어들어 98년 12월 56.2%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 뒤 몇 번의 선거에서도 60% 안팎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올해 12월 치러질 대선에서도 승리가 점쳐진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 차베스는 ‘지속가능한 농공정착촌’건설을 추진했다. 수도 카라카스에 인구의 80%가 살고 그 인구의 80%가 무허가 빈민촌에 거주했는데 차베스는 이들을 정착촌에 살도록 유도했다. 빈민촌과 농촌에 쿠바 출신 의사를 배치, 24시간 의료서비스를 구축하고 수 백만 명에게 교육 혜택을 제공했으며 광산 마을, 토착 원주민 문제에도 관심을 쏟았다. 이런 정책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룬 석유 국유화와 그것을 통해 얻은 막대한 자금 때문에 가능했다.

차베스가 표방하는 것은 ‘볼리바르주의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이다.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볼리바르의 투쟁과, 그의 스승이자 동료인 시몬 로드리게스의 노예 흑인 원주민 교육에 차베스는 크게 공감했다. 차베스는 “21세기에 반드시 필요한 과제는 사분오열된 남미 국가를 하나로 묶는 일”이라며 ‘대(大)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연합’을 주창하고 군사 분야의 통합도 제안한다. 그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를 남미 통일의 적으로 보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의 구상은 얼마나 실현될까. 가능성을 점치기는 어렵다. 막강 미국이 있고 콜롬비아, 브라질 등과의 사이도 좋은 편이 아니다.

책은 칭송까지는 아니지만, 차베스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접한 서양 언론의 보도가 대부분 그를 무식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 것을 감안하면, 우호적인 책도 읽을 만 하다. 정작 아쉬운 점은 그의 사상이나 정치적 철학, 세계를 보는 안목, 비전 등 ‘보이지 않는’ 것을 소홀히 한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정치 지도자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그래서 한계가 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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