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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100만번을 살아도 사랑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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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책이랑 놀자] 100만번을 살아도 사랑 없으면…

입력
2006.09.2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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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을 죽고 다시 ‘100만 번을 산 고양이’가 있다. 한 번의 삶마다 고양이를 무척 아껴주는 주인도 있다.

싸움 솜씨가 뛰어난 임금님은 전쟁터까지 고양이를 데려갔고, 뱃사공은 온 세계의 바다와 항구를 떠돌고 머물 때 고양이와 함께 했다. 서커스단 마술사는 고양이와 짝을 이뤄 마술을 보였고, 도둑은 고양이와 함께 담을 넘었으며, 여자아이는 늘 고양이를 업고 다녔다.

고양이는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죽고, 바다에 빠져 죽고, 마술사의 실수로 톱에 잘려 죽고, 담 넘어 들어간 집의 개에 물려 죽고, 여자아이 등에서 포대기 끈에 목 졸려 죽었다. 고양이를 잃은 주인들은 하염없이 목 놓아 울었지만 고양이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 고양이의 냉소는 100만 번이나 되풀이된다.

어느 한 때, 드디어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도둑고양이가 된다. 한밤중 거리의 쓰레기통 위에서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누운, 오직 자신만의 고양이…. 지나간 100만 번의 기억을 깔고 누운 듯 도도하다. 암고양이들이 찾아와 ‘멋진’ 그의 신부가 되고 싶어 한다. 커다란 생선을 선물하고 먹음직스런 쥐를 갖다 주며, 진귀한 개다래나무를 바치면서 사랑을 전한다. 그러나 하품만 뱉을 뿐인 고양이, “나는 100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한다.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새하얀 암고양이 하나가 이 대단한 고양이를 본 척 만 척한다. 그 앞에 가서 공중돌기 재주를 피우고 100만 번 산 얘기를 떠벌여도 말이다. 한번도 남에게 마음을 줘 본 적이 없던 고양이, 이번에도 “난 100만 번이나…”라고 말하려다 그만 약해진다.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드디어 하얀 고양이 곁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얀 고양이가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낳고 그 새끼들이 훌륭한 도둑고양이가 되어 뿔뿔이 흩어질 때도 함께 있었다. 할머니 고양이가 된 하얀 고양이랑 단둘이 살면서, 젊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게 울게 된 하얀 고양이랑 오래 오래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하얀 고양이가 그만 움직임을 멈췄다.

100만 번이나 살면서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고양이는 처음으로 운다. 100만 번이나 울다가 하얀 고양이 옆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이 소설 같은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인생이 느껴진다. 혼자 살다가 애타게 사랑하고 함께 부대끼며 익숙해지는…, 그 소박함이 진정한 행복이라니, 왠지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되돌아보게 한다. 일방적으로 사랑했던 고양이의 주인들, 어쩌면 나도 그런 주인은 아닐까? 소유하는 것에 익숙해 아이를 품 안에 종속시켜버리는…, 그런 엄마는 아니었을까?

어느 날, 아이가 ‘그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하고 차갑게 버틸 것 같아 무섭다.

어린이도서관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관장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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