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에서도 연합군을 최대화하고 반대 세력을 최소화하는 정파가 대권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97년 대선에서 DJP 연대를 추진한 김대중 후보가, 2002년 대선에서는 정몽준 의원과 후보단일화를 추진했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어김 없이 다양한 정치연합 시나리오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정기국회 기간임에도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등이 잇따라 정계개편 방안을 내놓는 등 벌써부터 탐색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非)한나라당 개혁세력 대연합’을 기대하는 여당과 뉴라이트세력 등을 포함한 보수대연합을 지향하는 한나라당의 정계개편 구상이 부딪치면서 정치권 새판이 어떻게 짜여질 지 주목된다.
여당의 정계개편 구상
열린우리당이 상정하고 있는 새판 짜기의 요체는 한마디로 ‘비(非) 한나라당 대연합’구도다. 거대해진 한나라당을 상대하려면 한나라당에 비판적인 모든 세력을 한 울타리에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근태 의장이 제시하는 ‘민주개혁평화세력 대연합’도 결국은 이런 뜻이다. 이런 구상에는 “현재 판으로는 안되니 판을 흔들어야만 한번 해볼 수 있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다.
우리당은 단순히 민주당과만 통합하기 보다는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 세력, 개혁 성향의 시민단체 등을 한데 묶는 대연합을 바라고 있다. 이 가운데 민주당과의 통합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특히 호남권의 지지 기반 회복을 염두에 두는 의원들은 “결국 민주당과는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우리당이 한ㆍ민 공조 추진 움직임에 대해 “정치적 매춘행위”라고 비난하며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고, 민주당도 자신들이 정계개편을 주도하려는 의지가 강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고건 전 총리는 범여권 대선주자군 중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적극적 연대 대상일 수밖에 없다. 대선 국면에서는 결국 사람 중심으로 구도가 짜여진다는 특성을 감안한다면 고 전 총리 진영은 여당이 반드시 끌어들여야 할 세력이다.
물론 여당은 이보다 더 큰 범주를 생각하고 있다. 김근태 의장이 “서민경제를 살리고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비전과 능력을 가진 세력이 대승적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그래서 개혁적 시민단체나, 참신한 전문가 세력, 노동계 등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박원순 변호사 등이 거명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김 의장이 ‘뉴딜’, ‘잡(job)딜’ 행보를 하며 재계와 노동계를 접촉하는 것도 이런 연합구도를 의식한 포석이다.
여당은 이 같은 시나리오를 실현하기 위해 대선후보 선출 방식으로 오픈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당내 주자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문을 활짝 열어야만 대연합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정계개편 구상
한나라당은 헤쳐 모여식 정계개편에 부정적이다. 대선을 1년 앞둔 현재 당 및 대선주자 지지율 등에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 보다 몇 걸음 더 앞서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유력 대권 주자들의 행보도 벌써부터 활발하다.
때문에 현 구도를 흔들 정계개편이 탐탁할 리 없다. 김무성 의원이 최근 “한나라당을 깬 뒤 신당을 만들어 정체성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헤쳐 모여야 한다”고 했을 때 당내 반응이 부정적이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강재섭 대표도 21일 관훈토론회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소속정당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며 “열린우리당이 지지율 높은 후보가 없어 판을 흔들려고 정계개편을 먼저 시작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시도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당이 민주개혁세력 연대를 명분으로 반(反) 한나라당 전선을 긋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적극 맞대응하지 않으면 2002년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한나라당이 맞대응격으로 구상하는 정계개편의 명분은 ‘보수세력 연합’이고 그 핵심 고리에 민주당이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이후 호남과 민주당에 꾸준히 공을 들여왔다. 최근 한화갑 민주당 대표를 당내 의원모임이 초청하는 등 교류도 잦아졌다. 러브콜의 강도도 점점 진해지고 있다.
적어도 민주당을 적으로 세우지 는 않겠다는 게 한나라당의 포석이다. 강 대표가 이날 관훈토론회에서 “양당이 합쳐질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며 지금부터 정책연대를 조금씩 해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적으로 삼지 않는다면 여당이 상정하는 민주개혁세력 연대는 이뤄지기 어렵다. 이 경우 국민중심당 등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도 보수 연대라는 이름 아래 한나라당쪽으로 견인할 수도 있다. 그간 코드를 맞춰온 뉴라이트쪽을 지원 세력으로 적극 끌어들여 더욱 외연을 넓혀갈 수 있다.
물론 단순 공조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호남을 끌어안을 수 있다면 한나라당으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다. 한나라당 주변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손을 잡는, 이른바 김-박 연대설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동서화합 등 상징성이 크고 파괴력도 엄청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