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축구 팬들에게 뜻 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랫동안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원을 든든하게 지켜왔던 이을용(31ㆍFC서울)이 돌연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것. 선수로서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 절정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인데다 2002 한일월드컵 때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히딩크호’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주역인지라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위해, 또 대표팀을 위해서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서 결단을 내렸다는 그를 구리 GS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났다.
# "후배들 공격축구 했으면"
주전 확보가 안돼 대표팀에서 은퇴를 했다? 천만의 말씀
대표팀에서 출장 시간이 줄어든 것이 은퇴 선언의 배경이 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을용은 빙그레 웃으며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터키에서 오랫동안 벤치를 지킨 적도 있고 경기 종료 5분을 남기고야 출장 기회를 잡기도 했다. 나는 선수 생활 동안 누구보다 시련과 좌절을 많이 겪어 본 사람”이라며 “주전 경쟁에 밀려 내가 은퇴를 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라고 항간의 소문을 일축했다.
# 어린선수들 기량 향상, 경험쌓으면 더 좋아져K리그 수비위주라 관중외면, 화끈한 경기 보여줘야… 정규리그 우승컵에 짜릿한 첫키스 할래요
이을용은 “독일월드컵 이후부터 대표팀 은퇴에 대해 고민해왔고 아내, 에이전트와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베어벡 감독은 아시안컵 본선까지 뛰어달라고 요청했지만 2010년 월드컵에서 주역으로 활약할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후배들이 실전을 통해 국제경기 경험을 쌓는 것이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대표팀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재미있는 축구만이 K리그의 살 길
대표팀 생활 중 가장 아쉬운 일로 독일월드컵 16강 진출 실패를 꼽은 그는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K리그의 활성화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2년 여 만에 복귀한 K리그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이을용은 “한국 축구는 지나치게 대표팀 위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좀 더 좋은 경기를 해서 K리그 경기에 관중을 끌어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구단의 경우 지나치게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 팬들이 보기에 지루할 수 밖에 없다. 관중을 모으기 위해서는 구단들이 플레이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경기마다 편차가 심한 것이 K리그의 단점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있는 반면 지나치게 수비에 집중해 지루한 경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고 꼬집었다. 이을용은 “후기리그 개막전이었던 서울과 수원의 경기처럼 서로 적극적으로 경기에 나선다면 팬들도 많이 찾아오시리라 믿는다”며 ‘공격적인 축구’ 만이 K리그의 살 길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일취월장한 어린 선수들 놀라워
2년 여 만에 복귀한 K리그에서 느낀 점을 묻자 이을용은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특히 한동원(20), 김동석(19), 고명진(18) 등 서울의 ‘영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을용은 “순진하다고 할까….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그라운드에서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을 참 ‘예쁘게’ 찬다. 기량만큼은 훌륭하다.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며 경험을 쌓아간다면 정말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 “서울은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과거에는 ‘너무 어린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 그 결실을 맺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생애 첫 우승컵 품에 안을 터
소속팀에서의 플레이에 집중하기 위해 대표팀 은퇴까지 선언한 이을용. 목표는 당연히 정규리그 우승이다. 이을용은 1998년 부천 SK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래로 정규리그 우승컵을 안아본 적이 없다.
이을용은 “컵대회, 토너먼트 우승 등은 많이 해봤지만 정규시즌 우승은 해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욕심이 난다. 전력도 강하고 팀 분위기도 좋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우승컵을 향한 의욕을 보였다. 이을용은 “(김)병지형, (이)민성 형도 있지만 그라운드에서 팀 전체를 컨트롤하는 것이 내 임무”라며 고참으로서 그라운드에서 리더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대표팀의 지네딘 지단 등의 경우를 거론하며 대표팀에 복귀할 의사가 있는 지를 물었다. 그러나 이을용은 단호했다. 누가 요청해도 앞으로 절대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일은 없을 거란다.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챔피언 등극’을 위해 소속팀에서의 활동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 이을용의 뜻이다.
이을용 프로필
▲생년월일=1976년9월8일
▲출생지=강원도 태백
▲출신교=강릉상고
▲소속팀=부천 SK(1998~2002.7), 트라브 존스포르(2002.7~2003.7), 안양 LG(2003.7~2004.7), 트라브 존스포르(2004.7~2006.7), FC 서울(2006.7~)
▲대표팀 데뷔=1999년8월
▲A매치 성적=50경기 출전 3골
▲주요 경력=2002 한일월드컵, 2004 아시안게임, 2006 독일 월드컵, 체육훈장 맹호장 수상
구리=김정민 기자 goav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