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학입학전형에서 논술의 비중이 30%로 급상승하자 여러모로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파장이 일고 있다. 우선 나는 논술을 학생 능력의 중요한 지표로 제시한 서울대의 안목과 조처를 환영한다.
논술은 한 학생의 지적, 인격적 발달 상태를 모두 동원하여 자력으로 물음에 답하도록 자극함으로써 그 정도를 비교적 온당하게 판정하게 만드는 데 가장 합당한 표현물이다. 인류의 중요한 지식문화는 거의 전부 논술의 형태로 확대재생산되어 왔다.
● 중고교에 철학 교육 인프라부터
나아가 지구화와 사회분화의 와중에서 각종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정리하여 결정해야 하는 국가기관, 기업, 시민단체에서도 논술과 토론의 능력은 필수적이 되어간다. 그런데 이 막강한 교육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논술 비중을 높인 맥락을 보면 마냥 기뻐할 수만 없어 유감이다.
우선 현행 공교육 안에서 통합형 논술 준비에 필요한 조처에 대해서는 서울대나 교육부나 별다른 해법을 내놓은 바 없다. 단지 EBS에 논술 강좌를 개설하는 것으로 논점을 피해 갔다.
이런 상태에서 자식이 고2 때까지 일류대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우왕좌왕하는 공교육을 우회하여 사교육에 대거 몰린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문제는 공교육에도 거의 없는 유능한 논술 교사를 사교육인들 제대로 갖추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서울대와 교육부 자체가 '논술'의 명확한 개념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년 서울대는 '논술'을 "암기된 지식을 묻고 그 답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결과 중심형' 시험이 아니라, … 문제 상황을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사고로 재구성하여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능력을 측정하는'과정 중심형 시험'"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지난 6월 15일의 2차 예시문항 중 자연계열 문항은 이런 논술 규정과 한참 거리가 멀다. 다음은 이때 나온 문항1의 논제1이다.
"포물선과 쌍곡선은 모양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 곡선이다. 그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이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포물선과 쌍곡선에 대한 내용적 지식을 '많이 아는' 학생이 기하학의 본성에 관해 '많이 생각한' 학생보다 훨씬 잘 풀게 되어 있다. 이것을 프랑스 바칼로레아의 다음 기출 문제와 비교해 보자.
"수학적 진리와 물리학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한가?"(캉ㆍCaen 학군)
설사 수학적 진리와 물리학적 진리에 관해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문제에 응답하려면 결국 '자기 입장을 정립'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자기주도적 사고 과정을 보여야 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서울대 논술 문제는 그 긴 지문으로 인해 학생들이 비판적ㆍ창의적 사고를 발휘할 여지를 상당히 제약하고 왕년의 대입 본고사에 나왔던 주관식 문제의 확대판이라는 인상이다. 그러면서 거의 철밥통처럼 굳어있는 교과목 경계를 관통하겠다니 영락없이 고난도의 통합형 추리 문제가 되어버린다.
● 교육부는 뭘 하고 있나
현재 고등학교 현장에서 논술은 '모든 교과'가 하는 것으로 인지되면서도 일단 글쓰기와 가깝다는 명목으로 주로 국어 교사들이 맡는 추세이다. 그러나 통합형 논술에서는 모든 교과를 접근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가 전제되어야 한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이 세계를 통합적으로 보는 것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장구한 세월 동안 해 온 일이다. 중고등학교에 철학 교육의 인프라도 깔지 않은 채 논술 비중을 높이겠다는 서울대의 방침은 현장 교사들에게 알아서 학생들을 통합형으로 훈련시켜 보내라는 오만한 요구로 비친다.
이런 서울대의 튀는 행태를 보고도 그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하는 데만 신경쓰는 교육부의 행태는 아무래도 교육부를 서울대 광화문 분소로 보이게 만든다.
홍윤기ㆍ동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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