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짝지어 두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로맨스를 싹틔운 서동요다. 삼국유사는 백제 무왕의 탄생을 ‘과부가 서울의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다 그 못의 용과 정을 통해 서동을 낳았다’고 적고 있다. 전북 익산 사람들은 서울(부여)의 남쪽이 익산이고 서동이 마를 캐고 금을 얻었다는 오금산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무왕이 백제 왕국의 새로운 부활을 꿈꾸었던 곳이 익산이라는 것이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깃든 땅 익산에 미륵사터와 미륵산(430m)이 있다. 왕이 된 서동이 부인과 함께 지금 익산시 금마면의 용화산(미륵산) 앞을 지나다 미륵보살을 만나고, 부인의 청에 따라 지은 절이 미륵사다.
신라 황룡사보다 2배가 크고 황룡사의 모델이 됐던 미륵사는 지금 석탑(국보 제11호)만을 남겨두고 빈 터로 남아있다. 석탑은 현재 해체복원중으로 거대한 사각 집속에서 부활을 모색중이다.
미륵사를 품은 미륵산을 올랐다. 교원연수원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산길이 1.5km 가량. 경사가 아주 급하진 않아도 제법 땀을 쏟게 만든다. 미래를 관장하는 부처 미륵을 만나러 오르는 길이다. 한걸음 두걸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랐다. 숲을 벗어나고 능선을 타면서 주위의 풍경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가을비에 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정상이 코앞. 시야가 뚫리며 발 아래 넓은 벌판이다. 과연 호남의 들녘이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풍경. 결실의 노란빛이 푸른 빛으로 스며들고 있다. 길을 안내하던 익산서동축제의 이도현 사무국장은 이 너른 들판을 ‘논바다’라고 표현했다.
정상 인근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왼쪽으로 금마저수지가 있다.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어 ‘지도 연못’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 이날은 아쉽게도 한반도의 모양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물이 빠졌기 때문이다.
미륵산 주변에는 큰 산이 없어 사방이 확 틔였다. 날이 좋으면 금강변 웅포까지 볼 수 있다. 뱃길이고 들길이고 모든 움직임이 한 눈에 들어오니 이보다 좋은 전망대도 없을 것. 무왕이 왜 이곳으로 천도를 꿈꾸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익산 시민들은 기득권을 쥔 귀족의 세력을 견제하며 자기 고향을 버팀목 삼아 왕권 확립을 도모했을 것이라 분석한다. 고려의 신돈이 평양 천도를 꿈꾸고, 조선의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륵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왕궁면 왕궁리라고 왕궁을 아예 지명으로 하는 곳이 있고, 그 곳에는 6만5,700평 규모의 거대한 궁궐터가 실재한다. 노릿한 들판을 내처 달려 금강변에 이르면 웅포나루다. 날씨 좋은 날 저녁이면 황홀한 석양을 연출하고 추수가 끝날 즈음에는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 드는 철새의 낙원이다.
▲ 익산서동축제 28일부터
익산은 보석가공으로 특화한 보석의 도시다. 고속도로에서 시내로 진입하자 마자 있는 보석박물관에는 거대한 반지와 다이아몬드 모형이 반짝이고 있다. 하지만 보석이 아무리 찬란하다고 해도 서동과 선화의 사랑 만큼이나 아름다울까.
익산시는 28일부터 10월1일까지 ‘국경을 초월한 서동 선화의 사랑이야기’란 주제로 익산서동축제를 연다.
전북이 고향인 꽃미남 중에서 뽑힌 ‘청년 서동’이 경주에서 올라온 선화와 함께 축제 분위기를 띄운다. 서동의 출생에서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그린 ‘서동열전’ 공연이 준비됐고 마당극 형태의 퓨전극 ‘사랑, 사랑, 내사랑아!’에서는 서동, 선화를 비롯해 로미오와 줄리엣, 향단과 방자, 장녹수 등 다른 많은 사랑의 주인공들이 등장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가을밤 러브시네마’를 통해 방영되고 백제문화체험마을에서는 백제생활 체험, 태학사 과학 체험, 서동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익산웰빙장터, 읍면동 먹거리장터도 개설돼 푸짐한 호남의 맛을 선보인다. (063)834-2438,9 http://seodong.iksan.go.kr
익산=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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