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재발한 군부 쿠데타로 혼미했던 태국 정국이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쿠데타 지지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쿠데타 발생 이틀째인 20일 푸미폰 국왕은 쿠데타와 이를 주도한 손티 분야랏글린 육군 총사령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올해로 즉위 60주년을 맞는 푸미폰 국왕은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릴 만큼 국민들의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다. 그 동안 쿠데타 등 중요한 고비마다 그의 판단은 정국의 방향타로 받아들여졌으며 군부도 그에게 절대 복종해왔다.
따라서 국왕의 쿠데타 추인은 손티 사령관의 정국 주도권 장악을 의미한다. 손티 사령관은 이날 "다음달 초까지 임시헌법 초안이 마련될 예정이고 그 기간 안에 새 의회가 구성되고 앞으로 2주일 안에 새 총리도 임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데바쿨라 프리디야손 태국 중앙은행 총재 등 4명이 총리 후보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데바쿨라 총재는 이를 부인했다.
이번 쿠데타는 탁신 치나왓 총리의 부패와 권력 남용이 주된 원인이다. 태국의 4번째 부호인 탁신 총리는 1월 자신의 가족이 통신주 매각으로 19억달러의 차익을 챙겼으면서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 지지 기반인 중산층의 퇴진 시위를 촉발했다. 쿠데타 발생 후 야당과 여론은 "탁신이 쿠데타 명분을 주었다"면서 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외신은 푸미폰 국왕의 '권력 줄타기'도 이번 쿠데타의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국왕이 겉으로는 내정간섭을 안하고 형식적인 국가수반 역할만 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권력투쟁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한 분석가는 국왕이 충성심 경쟁으로 군부를 통제해왔으며, 탁신 총리도 정적이나 군부 내 반대파는 물론 국왕과도 힘겨루기를 해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푸미폰 국왕의 추인이 쿠데타가 단행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루어진 것을 두고, 군부가 국왕의 사전 승인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손티 사령관은 쿠데타와 국왕과의 연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배후에는 아무도 없고 정부의 실책과 국민의 바람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결정해 약 2주 전부터 추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국왕, 군부와의 '파워 게임'에서 패배한 탁신 총리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명객 신분으로 타국을 전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손티 사령관이 "탁신은 재임기간 저지른 부정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태국 국영방송은 쿠데타 주동세력인 민주개혁평의회가 이미 정부 감사 기관을 접수해 탁신 총리 재임 당시 정부 부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이는 탁신 총리의 자산몰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탁신 총리가 싱가포르에 숨겨 둔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망명정부를 구성한 뒤 다시 권좌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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