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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실비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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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실비식당에서

입력
2006.09.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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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냉장고 옆면에 붙은 스티커에는 상단에 '내 고향 식당'이라는 글자가, 하단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그 사이는 무려 21가지나 되는 음식의 차림표다. 친구가 운영하던 식당도 차림표가 비슷했다.

전화주문을 받아 음식을 배달하는 식당이었다. 배달원 두 명을 두었을 뿐 장보기와 조리와 설거지를 전부 친구 혼자 감당했었다. 취급하는 음식 가짓수가 적으면 단골손님들이 식상하기 때문에 일이 벅차도 줄일 수가 없다고 했다.

반찬도 많고 찌개류에는 부탄가스 화로까지 달아 배달하면서도 음식값은 3,500원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일했지만 친구는 2년 만에 식당 문을 닫았다. 고객들이 더 값싼 식사를 해야 할 형편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내 고향 식당'은 남대문시장에 있다. 8년 전 잡지사 기자들을 따라 처음 거기에 갔다. 큼지막하게 썬 무와 통고추를 넣고 맵게 조리한 갈치조림이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친구들과 꼭 다시 와야지, 생각하며 게걸스레 먹었는데, 나올 때 식당주인이 쭈뼛쭈뼛 밥값을 사양하자 내 일행들은 진짜 안 냈다! 왜 그랬을까? 그 환대를 받고, 1인분에 겨우 5,000원인데! 그토록 맛있는 갈치조림을 그토록 낯 뜨겁게 먹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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