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정치안정을 내걸어 집권은 물론 연임에도 성공한 태국 대만 필리핀 지도자들이 부패, 정치적 오만함 등으로 몰락 또는 위기를 맞고 있다.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는 군사 쿠데타로 축출된 상태이며, 부인 우수전(吳淑珍) 여사와 사위 자오젠밍(趙建銘)의 부패, 자신의 공금 유용 스캔들 등 사면초가에 휩싸인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도 9일부터 시작된 2차 퇴진 운동으로 ‘식물 총통’ 신세로 추락하고 있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선거부정, 부패 등으로 2년 연속 탄핵안이 상정돼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태국 다음으로 위기의 수위가 높은 곳은 6월부터 총통 퇴진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대만. 천 총통이 소속된 민진당의 전 주석 스밍더(施明德)가 이끄는 퇴진 연좌 시위가 최근 천 총통 지지자들과 충돌하면서 급격한 정치변동과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퇴진 지지 시위대와 천 총통 지지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의 퇴진 운동 지휘부는 19일 연좌시위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천 총통 지지 지역인 이 곳에서 자칫 시위를 지속할 경우 어떤 사태가 유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가오슝에서는 시위대와 천 총통 지지자들간에 5차례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 수십 명이 다쳤고 경찰 500여명이 연좌시위 장소를 봉쇄한 뒤 삼엄한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타이난(臺南)에서도 총통 지지자들과 시위대가 충돌,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홍콩 기자 등 3명이 다쳤다고 경찰이 전했다.
대만 정부과 타이베이(臺北) 총통부 인근 타이베이역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스밍더는 과격 행동 자제를 호소했다.
그러나 총통 퇴진운동은 국민 정서를 등에 업고 확산일로다. 9일 총통부 주변에 20만명의 시위대가 운집했지만, 16, 17일 진행된 집회에서는 100만명 이상이 참가했고, 최근에는 직장인 등 화이트칼라까지 퇴근 후 시위에 참가하는 양상이다. 국민당 등 야당은 내각 불신임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퇴진운동 측은 대만 최대 국경일인 10월 10일 계기로 3차 퇴진 운동을 벌일 예정이어서 정국 혼란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양상은 천 총통 지지 기반인 남부와 중ㆍ북부의 여론이 완전히 쪼개진 상태로 임기 만료 1년 9개월을 앞둔 천 총통은 이미 집권능력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하지만 80%이상의 대만 국민들은 “총통이 퇴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혀 급작스런 헌정중단 사태를 우려하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재선 선거 부정을 저지른 의혹을 받는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말이 아니다. 2001년 집권 이래 5년간 정치인 법관 대학생 농민 등 730명이 암살당하는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계엄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8월에 상정된 대통령 탄핵안이 가까스로 부결됐지만 언제라도 그를 권좌에 올린 ‘피플파워’에 의해 내쫓길 수 있다고 외신은 전망하고 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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