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달라졌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신문기자는 가정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예고 없이 터지는 사건을 추적해야 하는 사회부 기자는 물론이고, 정치부 기자도 밤낮이 따로 없었다.
아침 일찍 주요 정치인들의 자택이나 조찬 모임 장소로 달려가야 했다. 또 밤이 깊어서야 귀가하는 그들을 자택에서 기다렸다가 한 두 마디라도 들어야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취재관행이었다. 좀처럼 가족끼리 한솥밥을 먹을 일이 없으니, 동거인이라면 몰라도 한 식구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울 정도였다.
■ 언론계만큼 일본의 영향이 짙게 남은 업계도 드물다. 밤낮으로 주요 정치인을 따라다니던 관행도 마찬가지였다. 밤에 쳐들어가고, 아침에 달려간다는 이른바 '요우치(夜討)ㆍ아사가케(朝驅)'의 흔적이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취재의 기본 원칙으로 살아 있다. 그것이 늦은 밤과 이른 아침의 일이라면, 낮 취재의 기본은 '매달리기'다. 회의나 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는 정치인을 따라가며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애쓴다. 신기하게도 귀찮아하거나 싫어하는 정치인을 보기 어렵다.
■ 고이즈미 준이치로(小川純一郞) 일본 총리는 '매달리기' 취재를 적극 활용한 정치인이다. 귀찮게 여기기는커녕 2001년 4월 취임 직후 기자단과 협의, 아예 하루 두 차례의 반(半)공식적 자리로 만들었다.
오전에는 취재기자만, 오후에는 사진기자까지 참석한 토막회견은 서술형보다 단답형 답변에 능한 그의 장점을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애초에 '매달리기'를 대체한, 기자단 앞에 잠시 멈춰 서서 한 두 마디 던지는 자리였다.
따라서 언론이 이 자리에서의 발언 내용을 물고늘어지기는 어려웠던 반면, 그의 분명한 말과 독특한 몸짓은 일본 국민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 오늘 자민당 총재, 다음주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는 퇴임 때의 지지율이 50%가 넘은 총리로도 기억될 것이다. 과감한 국내개혁과 경제재생 등 정책 성과가 높은 지지율의 주된 요인이지만 얄미울 정도로 뛰어난 미디어 감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간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집권 과정과 정치적 자산은 노무현 대통령과 흡사했다. 대중적 지지를 끌어올려 단숨에 정계 변두리에서 핵심으로 파고 들었다. 고집불통에,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을 과시한 것도 같았다.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을 가른 것이 다름아닌 미디어 감각의 차이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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