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탄압을 피해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이산 가족이 된 유대인 남매가 65년 만에 기적 같이 상봉했다. 어릴 때 생이별한 후 각기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살다가 노인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오빠 시몬 글라스버그(81)와 여동생 힐다 실릭(75) 남매.
나치 독일에 희생당한 수백만 유대인을 추모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기념관에서 18일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는 백발이 된 여동생을 얼싸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말문을 열었다. “얘야, 65년 동안이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글라스버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캐나다에서 상봉을 위해 황급히 날아온 오빠의 말에 가냘픈 체격의 실릭은 “만나게 되서 매우 행복하다”고 답했다. 러시아어로 말하는 실릭의 말은 옆에 있던 손자가 통역했다.
루마니아 태생인 두 노인의 이별은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나치 독일군이 루마니아를 침공하자 글라스버그 가족은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실릭은 언니를 따라 구소련으로 이주, 결혼을 하고 이름도 힐다 실릭으로 바꿨다. 에스토니아에 살다 구소련 붕괴 후 1998년 이스라엘에 정착했지만 언니 베르타는 전후 사망했다.
글라스버그는 부모 및 3명의 남자 형제와 함께 루마니아에 남아있다가 나치의 수용소에서 모두 살아남아 잠깐 이스라엘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했다.
글라스버그는 당시 흩어진 여자 형제의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실릭은 남자 형제들과 부모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6월 실릭의 손자인 데이비드가 인터넷을 통해 야드 바셈의 자료에서 발견한 할머니의 기록을 토대로 글라스버그 등 2명의 형제를 추적하는데 성공, 감격의 해후를 했다.
글라스버그는 이날 야드 바셈에 나오기 전, 15일 이스라엘에 도착해 처음으로 동생을 보았다. 그때 상황에 대해 그는 “말이 잘 나오지 않더군. 그저 울었지. 잘 모를거요, 65년을… ”이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실릭은 지금 20년 전쯤 사망한 부모의 묘소를 찾아보기 위해 캐나다 몬트리올을 방문할 꿈에 부풀어있다.
예루살렘 AP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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