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의 광폭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아 일선 법관들과의 ‘간극 좁히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법부 개혁 드라이브에 본격 시동을 건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법원장은 11일부터 연일 강행군을 거듭했다. 부산을 시작으로 진주 순천 광주 대구 대전을 거쳐 19일 서울로 돌아왔다. 한나절씩 지역을 돌며 간단한 인사 정도로 마무리했던 전직 대법원장들의 순방과는 사뭇 다르다. 2시간 가까이 법관들과 간담회를 가지며 사법부의 환골탈태를 호소했다.
여기에는 대법원장으로 취임하기 전 5년간 밖에서 사법부를 지켜 본 이 대법원장의 시각이 투영된 듯하다. 이 대법원장은 평소 “법원이 그 동안 법에서 정한 대로 재판을 해 오지 않았다”는 지론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사법부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는 그의 취임사와도 상통한다.
이 대법원장은 법정에서 소송 당사자들의 주장을 충분히 듣고 사건의 실체를 판단하는 공판중심주의와 구술(口述)주의 등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 대법원장은 19일 대전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받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리고 법정에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이 느끼는 사법부 위기 의식도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취임 이후 줄곧 자정 의지를 다졌는데도 고법 부장판사의 구속을 몰고 온 법조브로커 사건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늦을 수 있다’는 이 대법원장의 절박함이 광폭 행보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원 밖에선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신중한 구속ㆍ압수수색 영장 발부 등을 누누이 주문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직접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나섰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들이 사법부는 완전무결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대법원장의 순방으로 대법원장과 일선 법관들의 인식 격차가 많이 좁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면으로 지시가 내려올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대면하고 들으니 대법원장의 뜻을 이해하겠다는 평가가 법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며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음을 전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