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진짜 한국인으로 거듭 태어난 기분입니다.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안고 열심히 살아갈 작정입니다.”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며느리’ 24명이 19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을 찾아 우리나라의 민족정기와 독립운동의 숨결을 함께 느꼈다. 이날 행사는 우리 역사를 체험케 하기 위해 한국이주노동자복지회의가 올해 처음 마련했다.
필리핀과 중국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온 며느리들은 아직 한국 생활이 낯설다고 했다. 이들은 실제 가족이라는 울타리만 벗어나면 이방인 취급받기 십상이다. 어엿한 한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정작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배울 기회가 없었다.
이들처럼 결혼과 함께 이땅에 살고 있는 여성은 7만5,000명이 넘는다. 대부분 형편이 넉넉치 않은데다 남편이 출근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우리 역사를 배우는 건 꿈도 못 꾼다. 겨우 사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우리 말을 구사하는 정도이고, 한글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결혼한 지 3개월 된 미셀(24ㆍ필리핀)씨는 일제시대 일본군 위안부들의 참혹함이 담긴 전시물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어릴 적 필리핀에서 할머니한테 들은 비극을 직접 본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함께 온 시어머니 김춘자(65)씨의 품에 안겨 가슴을 진정시키던 그는 “한국인들이 왜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태극기의 강렬한 색채와 독특한 문양은 신비롭기만 했다. 태극기에 음양의 상호작용과 우주만물이 생기는 자연의 이치가 담겨있다는 설명에 며느리들은 일제히 “아~” 하는 감탄사를 쏟아냈다. 태극과 사괘가 새겨진 목각판에 잉크를 묻혀 찍은 도화지를 들고 활짝 웃던 호른 나비(27ㆍ캄보디아)씨는 “깊은 뜻을 담고 있으면서도 평화롭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태극기가 너무 멋지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애국가를 배우는 시간에는 절로 웅얼거렸다. 독일월드컵 때 워낙 자주 들어 귀에 익은 바로 그 노래다. 신나는 전자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던 며느리들은 곧잘 따라 불렀다. 부티느 꾸인(25ㆍ베트남)씨는 “그 동안 애국가가 축구 응원가 인줄로만 알았다”며 “가사가 어렵지만 가장 한국다운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며느리들은 밖으로 나와 통일동산에 올랐다. 동산 주위를 둘러싼 벽돌 하나하나에 통일의 염원이 담긴 글귀가 새겨져 있는 곳이다. 조그 아디티(25ㆍ인도)씨는 ‘대한민국 사랑해요. 그리고 행복해요’라고 적고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임신 8개월인 히리랑 카렌(24ㆍ필리핀)씨는 “내 아이가 살아갈 이 땅이 더 이상 분단된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김삼웅 독립기념관 관장은 “외국인 며느리들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계속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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