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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돈 버는 철학, 반성하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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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돈 버는 철학, 반성하는 철학

입력
2006.09.1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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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전통적으로 빛에 비유되었다. 플라톤에게 일반인은 동굴의 어둠에 갇힌 사람이고 지혜는 동굴 밖의 빛에 비유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진리를 아는 것은 빛의 조명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세상사에 지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철학적 사유가 개입되지 않은 곳이 없기에 철학은 빛이다. 하지만 철학이 그렇다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 철학의 어두움이 있다.

● 조지 소로스와 논술강사

여의도에 있는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친구는 자신들이 하는 사회과학적 연구가 궁극적으로 철학에 귀결된다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은 개념과 가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구에 왜 철학자들을 초대하여 함께 연구를 수행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철학에는 생산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철학의 생산성은 무엇으로 입증될까? 철학의 유용성은 어디에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에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서양 고대 철학자 탈레스에 관한 흥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 가운데 하나로 불릴 정도로 지혜로운 자였다. 하지만 그는 가난했다.

하루는 친구들이 그의 가난은 철학의 무용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자 탈레스는 곧 돈을 벌어 보이겠다고 장담했다.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면서 배운 천문학 지식을 통해 일식을 예언하기도 했던 그였기에 이듬해 올리브 농사에 큰 풍년이 들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진 돈을 털어 올리브 짜는 기계들을 사 들였다가 올리브 대풍이 들었을 때 그 기계들을 비싼 값에 팔아 큰 소득을 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의 유용성을 증명할 최상의 방법은 돈을 버는 것이다. 세계적인 거부 조지 소로스가 학부 때 철학을 전공했다거나, 유명한 논리학 책을 쓴 어빙 코피는 인세로 대저택에다 경비행기까지 샀다거나, 요새 논술시장의 돈 많이 버는 강사들은 온통 철학 전공자들이라거나 하는 말들은 철학과 새내기들의 기를 살려주기에도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이 돈 버는 지혜도 준다는 것은 철학의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다. 이 때 철학은 그의 본질인 근본적 사유와 반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물었듯, 오늘의 철학은 돈으로만 모든 것의 유용성을 입증하려는 이 시대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다.

유용성과 생산성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척도가 유익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삶에 가져온 폐해도 너무나 크고 명확하기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불가피한 내적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다.

● 자살률 1위, 철학 상실한 사회

철학자는 현실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반성한다. 철학의 유용성이나 삶의 가치가 돈으로 입증될 수 없다고 믿는 철학자들은, 바로 그 이유에서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을 칭송한다.

모든 일에 1등이 되기를 좋아하는 우리 한국이 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승전보'를 접한 날, 철학자는 철학을 상실한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본다.

김선욱ㆍ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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