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의 임명절차가 한 달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19일에도 국회 본회의 임명동의안 상정이 이뤄지지 못한 만큼 추석 이후에나 논의가 가능해졌다.
헌재소장은 회의와 재판에서 특별히 우월한 역할을 하는 자리가 아니며, 법에 따라 선임되는 권한대행도 있는 데다, 재판관 7인 이상이면 회의와 재판에 별 문제는 없다. 그렇다 해도 제4부에 해당하는 중요한 헌법기관장의 궐위가 장기화하는 상황은 딱하다.
당초 전 내정자에 대한 야당의 거부감으로, 즉 정치적 동기로 문제가 촉발된 것이라는 지적은 일정 부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시발이 어떻든 애초부터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모든 법률에 대해 최종적으로 헌법적 판단을 가리는 기관의 장에 대한 임명절차가 위법성을 띠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었다.
원천적으로 위법소지를 없애는 법률적 접근방식으로 다뤄졌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법의 편의적 유추해석을 통해 국회 임명동의가 이뤄진다면 헌재의 권위와 신뢰성 추락 등 심각한 후유증이 이어질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무리한 정치적 절충 시도는 부작용을 남길 뿐이다.
결국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사람은 인사권자와 당사자밖에 없다. 청와대도 절차상 하자를 인정한 만큼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이상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지 말고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이념과 철학을 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소 그토록 강조해 온 원칙에 충실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이런 파행 속에서도 전 내정자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이나 여당의 정치력에 기대 사태의 호전을 기다리는 듯한 모양새는 독립적 헌법기관의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더욱 회의하게 만들 뿐이다.
지금으로선 헌재소장 내정을 원점으로 돌리고 다시 정확히 적법절차를 밟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더 이상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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