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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씨 "인혁당 재건 사건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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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씨 "인혁당 재건 사건 조작"

입력
2006.09.1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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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만에 열린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시인 김지하(65)씨는 재판 직전 물끄러미 법정을 바라보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1975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던 자신과 그 때 이승으로 떠난 동료들을 생각하는 듯 했다.

김씨는 70년대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사형ㆍ무기징역ㆍ사면을 거치는 등 한국 현대사의 가시밭길을 걸어 왔으며 70년 권력상층부의 부패상을 그린 시 ‘오적(五賊)’을 써 구속되기도 한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열린 인혁당 재건위 사건 공판에 출석한 김씨는 “우리의 바람은 헌정질서의 회복이었다. 정부에 위해를 가하거나 국가를 전복하려는 것은 목적에도 없었다”며 체제전복 등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씨는 또 “학생운동은 자금이 어디서 나오느냐가 상부선을 결정한다”며 “내가 천주교 지학순 주교에게 받아 그들 쪽에 보낸 돈이 120만원”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정은 인혁당 관련자 여정남씨가 이철씨에게 준 2,000원을 근거로 인혁당을 민청학련의 배후로 지목했었다.

검찰이 사형선고를 받고 재판과정 중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항소를 포기한 이유를 묻자 김씨는 “당시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유신정부에 맞서 ‘엉터리 법률 밑에서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의미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증인신문을 마친 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조작이자 법에 의한 살인행위로 피해자들의 복권이 위대한 민주역사를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당시 교도소 보안분실장 이모씨는 “사형수 8명이 집행 전 모두 ‘억울하다’고 말했으며, 적화통일이니 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한 “당시 전기 고문을 당해 한 사형수가 탈장이 됐다는 말도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민청학련 사건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74년 이철, 유인태씨와 함께 사형을 선고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75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당시 중정이 민청학련의 배후로 지목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여정남씨 등 8명은 대법원 확정판결 후 18시간 만에 전격 사형집행됐다.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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