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국가 조선은 임금의 글씨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특히 왕실은 선대왕의 위업을 간직하고 계승한다는 뜻에서 역대 임금의 글씨를 보존하는 데 각별한 힘을 쏟았다. 그 보존 방식의 하나가 석각(石刻), 즉 임금의 글씨를 대리석에 새기는 것이었다. 이 같은 어필석각(御筆石刻)은 임금의 필적을 항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조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9일부터 ‘글씨로 보는 조선 왕실의 취향’전을 열고 어필석각 20점을 처음 공개한다. 문종 세조 성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등 필명이 높았던 임금의 글씨들이다. 또 선조 임금이 쓴 적선(積善), 정조가 쓴 제문상정사(題汶上精舍), 낭선군(선조의 손자)이 옮겨 쓴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 등 박물관이 소장한 왕실 인물의 친필 원본, 석각, 목판본, 모본(원본을 그대로 따라 쓴 것), 탁본 등 20여 점도 함께 선보인다.
박물관 관계자는 “조선시대의 임금은 글을 쓰면서 조상의 모습, 조상의 정신을 닮으려 했기 때문에 대체로 선대 임금의 글씨체를 존중하고 계승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며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민간에 비해 보수적인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임진왜란 때문에 오랫동안 궁궐 밖에서 생활한 선조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이전 임금의 송설체에서 탈피, 선이 굵고 각이 큰 글씨를 썼다. 선조의 뒤를 이은 인조 효종 현종 임금 등도 비슷한 서체를 보였으나 숙종 영조를 거치며 다시 송설체로 돌아갔고, 정조는 선조의 글씨체와 송설체가 복합된 개성적인 글씨체를 보여주었다. 전시회는 12월 17일까지.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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