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변했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몇 년 전만 해도 '개혁의 수술대에 가장 먼저 올라야 할 비대한 공룡'이라거나 '인사잡음이나 납품비리가 툭하면 불거지는 복마전'이라는 인상이 짙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사와 관련한 각종 투서부터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중소 기업들도 "한전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고 반색이다. 국가청렴위원회 청렴도 조사에서 맨 꼴찌에 머물던 청렴지수 역시 지난 해에는 공기업 가운데 2위로 껑충 뛰었다.
2004년 3월 취임 이후 이 같은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한준호 사장을 서울 삼성동 본사 접견실에서 만났다. 접견실 한 켠에는 윤리경영을 최우선시 하는 한 사장의 철학을 반영하듯 '깨끗한 기업, 활기찬 한전'을 다짐하는 윤리강령이 액자 속에 걸려 있었다.
한 사장은 "이 달부터 시행중인 한전 배전부문(변전소에서 각 가정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파트)의 독립사업부제를 통해 경쟁을 도입하고 효율성을 높여 1999년부터 추진해온 전력산업 구조개편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시장이 포화 상태인 만큼 아프리카와 중동 등 해외로 적극 진출해 신성장 동력을 찾을 방침"이라며 "한전의 뉴욕증시 상장에 이어 내년에 런던증시 상장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 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한 사장은 "경영자 사관학교라 불리는 제네럴 일렉트릭(GE)의 크로튼빌 연수시설을 벤치마킹해 한전의 서울연수원도 인재산실의 교육장으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GE의 전 CEO였던 잭 웰치의 자서전 '끝없는 도전'을 두 차례 읽고, 벽 없는 조직에 착안해 사무직과 기술직을 자리바꿈하는 인사개혁을 단행한데 이어 최근에는 크로튼빌 연수프로그램에도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최근 루마니아에 다녀오신 걸로 압니다.
"루마니아와 원전기술 및 정보교환에 관한 협력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루마니아에선 현재 원전 2기를 가동 또는 건설중에 있고, 앞으로 3,4호기를 추가로 지을 예정입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13개 회사가 여기에 입찰했는데, 이미 20기의 원자로를 가동중인 한국은 기술력을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고있어 루마니아측도 한국 원자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습니다."
-한전이 이 달부터 배전부문의 독립사업부제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2004년 노사정 위원회는 배전부분을 분할할 경우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서 분할중단 및 독립사업부제 도입을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전지사 중 100만 가구 이상의 고객을 확보한 9개를 독립사업부로 떼어낸 것이지요. 또 사업부 본부장에게 예산과 인사, 조직 등의 자율권을 줘 상호경쟁을 유도하고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토록 한 것입니다."
-한전의 해외사업 성과가 적지 않습니다.
"한전이 덩치만 크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은 국내사업에만 치중한 탓입니다. 국내 전기수요는 앞으로 선진국처럼 매년 1~2% 증가에 그칠 텐데요.
그런 만큼 따라서 국내 수요 증가분은 포스코 같은 민자 발전사업자에게 주고, 한전은 해외에서 외국 전력회사와 대결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2015년까지 해외 발전설비 1,000만㎾를 확보해 해외사업에서 1조3,8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구상입니다."
-중동쪽 사업을 구상중이라고 하던데요.
"현재 필리핀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에 진출해 있고 레바논에서도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에선 발전소 2곳(87만㎾)을 운영중인데 최근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 다른 발전소가 가동이 중단되는 바람에 우리가 레바논 전력의 80%를 맡아 공급했습니다.
한전 직원 2명이 현지에 끝까지 남아 발전소를 운영해 레바논 정부의 큰 신뢰도 얻었지요. 레바논을 교두보로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 진출도 적극 검토중입니다."
-요즘 상생경영이 화두인데, 중소기업과 관계는 어떻습니까.
"기업의 경쟁력은 중소기업에서 나옵니다. 중소기업청장 재직시 한전만 좀 중소기업들을 도와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안 도와주더군요. 그래서 한전 사장에 취임하자 마자 중소기업실부터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요즘엔 중소기업들로부터 한전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요. 중소기업에 기술과 경영지원을 해주고 그 성과를 절반씩 나누는 성과공유제도 공기업 최초로 지난해 8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남은 재임 기간중 역점을 둘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다음달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가동에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송ㆍ변전 건설분야까지 ERP가 구축된 것은 세계 최초라고 하더군요. 이 것이 가동되면 조직내 벽이 허물어지고 정보공유가 이뤄지면서 거울처럼 투명하게 될 겁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투명경영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겠지요."
-런던 증시에 상장해달라는 러브콜이 오고 있다던데요.
"왜 뉴욕에만 상장하느냐, 유럽이나 아프리카에 진출하려면 런던 증시에도 상장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지요. 내년쯤 상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경영방침으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윤리 경영입니다. 한전은 과거 청렴위원회 조사에서 2년 연속 꼴찌를 차지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일선 사업소를 찾아 다니면서 직원들을 설득했지요. 윤리경영을 통해 경영평가에서 1등을 해서 인센티브로 보상받자고 말입니다. 그 결과 많은 임직원들이 윤리경영에 동참했고 이젠 청렴도가 공기업 중에 2등을 차지할 만큼 높은 수준으로 개선됐습니다."
-재임중 한전의 인사시스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국내 사업이든 해외사업이든 인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1961년 공사 체제가 된 한전은 가장 오래된 조직 중의 하나여서 조직에 대한 직원들의 애사심이나 자긍심이 높지만, 자기 내부만 알고 바깥과 융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기 3년 동안 인사하나 만큼은 제대로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전은 4,000여명의 과장들이 800명의 부장직 자리를 놓고 승진 경쟁을 벌입니다. 때문에 그 동안 승진 때마다 본사에 로비한다고 시끄러웠지요.
그래서 사장이 갖고 있는 임명권한을 일선 사업소장에게 과감히 넘겨주고 잡음이 나면 사업소장을 문책토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인사 때마다 쏟아지던 각종 투서가 없어지더군요. 인사자료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사무직과 기술직간의 자리바꿈을 통해 내부의 벽도 허물었습니다."
-최근 GE의 크로튼빌 연수프로그램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3일간 경험하고 왔습니다. 그 곳에 가보니 인재사관학교, 혁신의 산실이라는 GE의 전 회장 잭 웰치의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한전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기업의 철학이 수립돼야 하고, 직원을 교육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중요합니다.
GE의 경우 크로튼빌과 연구센터(GRE)가 양대 축 역할을 했던 것이이죠. 한전도 이들 기관을 벤치마킹해서 서울 태릉의 연수원과 대전의 한국전력연구원을 한국의 크로튼빌, 한국의 GRE로 키울 생각입니다."
● 한준호 사장 프로필
△45년 경북 구미생 △경북고ㆍ서울대 법대 △행시 10회 △98년 산자부 기획관리실장 △ 99년 중소기업청장 △ 2002년 중소기업 특별위원회 위원장
정리=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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