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주간'이란 낯선 문화행사가 서울과 광주 등에서 열리고 있다. 이 지역의 영화 드라마 무용 음악 등을 국내에 소개하며 교류를 넓히기 위한 화려한 잔치다. 정부와 방송사 등이 마련한 이 행사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 모색을 표방하고 있다. 한 겹을 들춰 보면, 한류를 지속ㆍ확산시킨다는 문화전략이 깔려 있다.
중국 언론이 '한류(韓流)'라고 이름 지워준 후, 10여년 동안 이 바람은 세계로 번져 나갔다. 한국 상품의 이미지를 높이는데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경험칙은 한류에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외에서 '한류가 일방적으로 흐른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올해 첫 행사가 열리게 된 셈이다.
● 한류 불씨를 지키려는 잔치
문화는 국경을 넘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과거 중국의 문화적 자양을 흡수했고, 또 근대화에 한 발 앞선 일본을 통해 서구 문화를 수용하기도 했다.
일본은 중국과 달리 문화적 선진을 무기로 동남아에서 제국주의적 침탈을 일삼았다. 한류가 높은 고지에 도달해 있을 때,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이 이런 졸렬한 경향이다. 한때 거센 '일류'(日流)와 '홍콩류'가 불다가 어느 날 소멸했거나 위력이 약해졌듯이, 경제적 이득만 추구하면 마침내 그것마저 잃게 된다. 늦게나마 동아시아 대중문화 잔치가 열린 것이 다행스럽다.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권에서 반(反)한류 기류가 감지된 것이 지난해부터라고 한다. 그 무렵 재일 '한국인 교수' 오선화(吳善花)가 국내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길래 저렇게 못된 말만 골라서 고국을 헐뜯는가. 대체 무슨 원한이 깊어 책까지 발간하며 악행을 일삼는가.
모든 반한류의 책임을 그에게 미루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일련의 악의에 찬 발언으로 한류의 열기를 서늘하게 식힌 혐의의 적지 않은 부분은 그에게 돌아간다. 한 예를 보면 그는 지난해 한 저명한 일본잡지에 '욘사마와 결혼한다면- 한류 결혼의 현실'이라는 유치한 글을 기고해 드라마 '겨울연가'로 높아진 한국인의 이미지를 깎아 내렸다.
한국 남성은 연애할 때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써가며 여자를 유혹하지만, 결혼 후에는 바람기와 폭력, 남아선호사상, 고부 간 갈등 등을 통해 여성을 견딜 수 없이 괴롭힌다는 것 등이다.
지난 광복절 MBC 'PD수첩'은 그의 정체와, 그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특집 '신친일파의 정체를 밝힌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오선화는 1983년 일본으로 건너가 호스티스로 일하다가 학력과 일본으로 귀화한 사실을 속이고 타쿠쇼쿠(拓植)대 국제개발학부 교수가 되었다.
그는 '치맛바람' '한국병합의 길'등의 책을 통해 조선인의 자발적 창씨개명, 한국정신대 존재의 부정 등을 주장해 왔다. 이는 일본 우익의 망언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 한국인을 헐뜯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발행된 많은 책들은 또한 대필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의 강의도 저잣거리의 잡담 수준이고 오류 투성이다.
● 찬물 끼얹는 일본 귀화인
일본 우익이 오선화를 '한국인 지식인'인 것처럼 내세우지만, 그는 일본에 귀화한 '고젠카'에 불과하다. 그것이 밥벌이와 출세의 수단이었다면 인생이 가련하고,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겸허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를 비판하며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시구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일본 우익이 그를 악용하는 점에서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 우익은 과거 정한론(征韓論)의 거점이자, 지금 혐한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한류는 국가 간 주고받는 쌍방향 문화현상으로 승화하여 오래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이들 앞에서 속수무책인 채, 한류의 지속을 바라는 현실은 답답하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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