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선생님은 제게 바이올린 제작의 의미를 일깨워주신 분입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16일 열린 작곡가 안익태 선생 41주기 추모식에 참석차 한국을 들른 재일동포 바이올린 명장(名匠) 진창현(77)씨.
향후 5년간 밀려있는 바이올린 주문제작과 각종 강연으로 일정이 빡빡한 그가 열일을 제쳐두고 한국에 온 것은 음악을 통해 안익태 선생과 깊은 우정을 나눈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올해는 안익태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안 선생님을 만난 것이 벌써 43년 전이네요. '귀한 분이 오셨으니 어서 집으로 오라'는 시노자키 히로츠구 교수의 전보를 받고 한 걸음에 달려갔지요."
무사시 음대 시노자키 교수는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제작하던 진씨의 가능성을 인정,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사주었던 사람으로 안익태, 홍난파 선생과 구니다치 음대 동기생이기도 했다.
진씨가 어려운 상황에서 바이올린 만드는 모습을 지켜본 안익태 선생은 이후 지휘봉과 의상, 악보 등을 넣은 트렁크를 아예 진씨에게 맡기고 일본에 올 때마다 그의 집에 들렀다.
둘의 만남을 지켜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은 "진씨를 바이올린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한국인이라며 각별히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일본 재입국이 불가능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안익태 선생은 진씨가 세계 최고의 기타 제작자인 이그나시오 플레타로부터 악기 제작을 배울 수 있도록 스페인 행을 주선하기도 했다.
진씨는 안익태 선생에 대해 "바이올린 제작의 의미를 알게 해주신 분"이라고 했다. "내가 바이올린을 깎는 것을 한참 보시더니 '자네는 우리 민족에게 정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네. 돈이나 명예보다 조국에 도움이 되는 사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지'라고 하시더군요. 막연히 혼자 좋아서 바이올린을 만들던 제게 큰 충격이자 깨달음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바이올린을 만들다 눈이 저절로 감길 때도 그 말을 떠올리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는 진씨는 1976년 국제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 제작 콩쿠르에서 6개 부문 중 5개의 금메달을 따냈고, 84년에는 미국 바이올린 제작자협회로부터 '마스터 메이커'의 칭호를 받았다.
그에게는 안익태 선생과 관련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한ㆍ일 국교정상화 이전이라 한국으로 송금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 한국과 일본을 드나들던 안익태 선생이 진씨의 어머니에게 돈을 전달해주곤 했던 것이다. "외아들이 바이올린 만든답시고 일본에 가 있는 바람에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셨지요. 안 선생님 덕분에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진씨는 손수 만든 바이올린을 안익태기념재단에 기증하고, 안익태 선생의 삶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한 이탈리아 영화인도 돕기로 했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17일 일본으로 돌아간 진씨는 12월 5일 KBS홀에서 열리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 맞춰 다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글 김지원기자 eddie@hk.co.kr사진 손용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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