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거론됐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불리한 사실을 감춘 한국측과 정상회담 내용을 뒤늦게 흘려 상대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미국 정부 모두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 북한인권특사는 16일 미국의 소리(VOA)방송 인터뷰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4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중(오찬)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 실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시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탈북자를 받아들이고,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미 워싱턴포스트도 15일 정상회담 결과를 보도하면서 “백악관은 양국 정상회담에서의 불화 가능성을 최소화하기로 결정, 회담을 1시간 정도로 줄이고 뒤이은 오찬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회담에 배석하지 않았던 딕 체니 부통령, 레프코위츠 특사 등 네오콘(강경보수그룹) 인사들이 오찬에 참석해 이 같은 보도의 신빙성을 높였다.
그러나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15일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북한 인권문제 논의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양국이 논의했다는 사실만으로 북한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는 민감한 사안. 따라서 파장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오찬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정식 의제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정부 당국자는 17일 “정상회담 오찬 석상 발언은 내부 참고용 정도에서 정리하는 수준으로, 정상회담 의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논의 사실이 공개된 경위를 우선 확인한 뒤 미국측에 대한 항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정보만 공개하려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미국의 뒤통수 때리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양국이 언론에 공개키로 합의하지 않은 사안이 한쪽 언론에만 흘러나온 자체가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일로, 한국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접근 방안’ 모색에 합의했음에도, 미국측이 하루 만에 인권문제 거론사실을 흘려 대화국면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대북 온건정책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미국이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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