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진선여중ㆍ고 학부모들은 요즘 바짝 날이 서 있다. 남들은 학군 좋고 위치 좋은 학교에 딸이 다닌다며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실상을 모르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발단은 2년 전 학교 남쪽에 인접한 개나리 2차 아파트와 남동쪽에 있는 유치원이 재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공사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고 소음과 분진 등으로 면학 분위기도 훼손됐다. 내년 초에는 학교 동쪽과 서쪽에 바로 붙어 있는 개나리 4, 5차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간다. 학교와 12m 도로 하나를 두고 북쪽에 있는 성보아파트도 사업계획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조만간 공사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성보아파트는 재건축이 되면서 학교와의 도로폭이 9.5m로 지금보다 2.5m 줄어들게 된다. 학교를 둘러싼 사방이 공사판으로 변하기 직전이다. 2004년부터 따지면 공사가 6,7년간 계속되는 셈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학부모들은 발끈했다. 자녀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은 물론, 사생활보호조차 힘들다고 판단한 진선여중 3년생 학부모들은 서울 강남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진선여고에 배정하지 말 것을 수 차례 요구했다. 19일에도 학부모회를 열어 같은 요구사항을 결의했다. 진선여고 학부모들도 자녀를 전학 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학교측도 강남구와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교육청은 “이전부지가 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문제는 진선여중ㆍ고 이외에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 학교 주변에 재건축이 예정된 곳이 20여 군데에 이른다는 점이다. 진달래 아파트가 역삼중에서 50m 이내 거리에서 재건축을 시작하고 잠원동 신동초등학교와 경원중 부근에서도 재건축이 진행될 예정이다. 더구나 이 달 25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시행에 앞서 인가를 얻어두기 위한 재건축 신청은 더욱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관할 구청이 재건축 인가를 내주기 전에 시공사가 학부모 교육청 등과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법 조항은 없다. 강남교육청 오대수 관리과장은 “법적으로 수업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5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주택재건축에 따른 학생수용대책’이란 시행령을 하달, 시공사 학부모 교육청 등 당사자 간 사전 협의가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협의 결과도 강제력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강남구 고재풍 재건축팀장은 “협의체가 존재하지만 구속력이 없어 약속 이행을 담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강남구 관계자는 “학생들의 학습권, 건강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재산권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시공사가 결격 사유가 없다면 인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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