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이 미국에 의해 기획됐다는 음모론은 믿지 않습니다. 빈 라덴의 발언과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음모론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입니다."
'플래툰' '7월4일생''닉슨' 등을 연출한 미국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60)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국내 개봉(10월 중순)을 앞두고 14일 방한했다. 재미동포를 아내로 둔 스톤은 그 동안 개인적으로 수 차례 한국 땅을 밟았지만 영화 일로 방한하기는 처음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9ㆍ11을 다뤄 미국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 세계무역센터에 출동한 경찰 두 명이 건물 붕괴로 매몰되었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9ㆍ11의 정치적인 문제보다 가족애와 동료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치와 무관한 소시민이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9ㆍ11을 정치적 잣대로 다루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더 많은 시간을 두고 9ㆍ11의 진정한 실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199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JFK'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40년 가까이 쌓인 자료 덕분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미국이 알 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잖아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는 스톤 특유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찾을 수 없지만 스크린 밖에서 그의 반골기질은 여전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5년 전보다 더 악화했습니다. 미국 행정부 요직에 들어 앉은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이 자신의 정책 목표를 위해 9ㆍ11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내비쳤다. 그의 입에서는 한국영화와 감독 이름이 줄줄이 쏟아졌다. 제목만 아는 영화는 '감독이 누구냐'고 되물으며 메모를 했다. "'쉬리' '무사'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무사'의 활 쏘는 장면은 '알렉산더'에 많이 참고했어요. '무사' 감독이 누구죠? 그 다음 작품은 무엇입니까? 박찬욱 임상수 감독도 매우 좋아합니다.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연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는 코미디 '그녀를 모르면 간첩'도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그녀를…'이 한국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하자 그는 "한국인들은 자국영화에 너무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며 웃어보였다. 그가 말하는 한국영화의 장점은 솔직담백하다는 것. "가식적이지 않고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매력이죠."
15일은 스톤의 60번째 생일이었다. 그는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에서 회갑을 맞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제 딸도 반(半) 한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는 한국에서 생일 상을 받으니 더 기분이 좋네요."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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