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상학과 나오면 다들 디자이너 하려고 하지 재단사나 봉제사 하려는 사람 있나. 우리처럼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앙드레 김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도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15일 기능인 중 최고의 반열인 ‘명장’(양장 부문)에 선정된 임병렬(72) 쉬크리 패션 상무이사. 그의 목소리에서는 명장에 뽑혔다는 기쁨보다는 우리 사회의 기능경시 풍조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묻어났다. 장관 부인이 애지중지하던 귀한 옷감에 담뱃불로 구멍을 내 거의 죽다 살아날 때도, 재봉틀 바늘이 손가락을 관통해 병원에 달려갈 때도 재단사를 천직으로 알았던 그다.
전국적으로 60여개가 넘는 의상학과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은 단 하나, 디자이너다. 옷감을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을 하는 재단사는 아무도 하려 않는다. 매일매일 바늘의 공격에 시달려야 하는 봉제사는 말할 나위 없다.
“재단사나 봉제사는 폼이 안 나잖아. 우리 회사에 봉제사가 20명 있는데 평균 나이가 41세야.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해. 졸업해도 바느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젊은 사람들이 무슨 죄겠어. 기술 가진 사람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는 사회가 문제지.”
전북 전주시에서 태어난 임 상무는 야간 중학교를 졸업한 16세 때부터 재단과 봉제 등 양장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바늘 인생’ 56년인 셈이다. 전주 변두리의 허름한 양복점에서 일을 시작해 서울 종로와 명동을 오가며 기술을 닦았다. 그의 두 손은 엉망이었다. 손가락은 숱하게 바늘에 찔려 흉터가 가실 날이 없었고, 옷감을 접고 재단할 때 주로 쓰는 손톱은 다 닳아 “30년 동안은 손톱 깎을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1971년부터 82년까지 종로에서 복장학원을 운영했다. “내 제자 중에는 지금 의류업계에서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꽤 있어. 요즘도 의상학과 교수들이 실무교육을 받으러 찾아 오기도 해.” 이원재 패션의 이원재 사장, 이오 패션의 윤성길 사장 등이 그의 제자다.
임 상무는 2000년 국제장애인 기능올림픽대회 선수 단장으로 나가 한국의 종합우승을 이끌었다. 그가 (언제) 펴낸 재단기술 실용서는 대학에서 필수 교재로 쓰이고 있다. 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재단ㆍ봉제 훈련기관을 만들어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 名匠 17명 선정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이날 임 상무를 비롯해 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한 명장 17명을 선정했다. 고려청자의 유약을 개발해 경기 이천시가 도자산업의 중심지로 각광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유광열(64ㆍ도자기공예 부문)씨, 국내 최초로 단파무선통신 무인원격자동화 공정을 개선해 700억원의 경비를 절감한 정석영(55ㆍ전파통신 부문)씨 등이 영예를 안았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20년 이상 근속한 해당 분야 최고의 기능인으로, 86년부터 매년 선정해 총 437명이 명장의 위치에 올랐다.
이번에 선정된 명장 우수지도자 기능장려우수사업체 등은 다음과 같다.
▦명장(17명)= 윤계준(정밀측정) 김용희(귀금속가공) 유광열(도자기공예) 이치우(항공정비) 김주환(객화차정비) 임호순(미용) 김영희(편물) 박명복(계량) 박성규(칠기) 정석영(전파통신) 변종복(금속공예) 임병렬(양장) 김기탁(선체건조) 김춘식(주조) 조현근(제관) 김기하(금속재료) 윤명옥(고분자제품제조)씨
▦우수지도자(5명)= 추진엽(영남공고) 김용국(해남공고) 방중배(강릉농공고) 황영하(시화공고) 김필동(안동교도소)씨
▦기능장려우수사업체(1개)= 갑우정밀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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